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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Jul 08. 2019

미니스커트를 입고, 띠엔동을 탈 거야.

2019년 7월 8일, 일 년 그리고 석 달


쑤저우로 터를 옮겨 온 지도 꽤 여러 달이 지났다. 적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것들에는, 어느 날 돌아보니 이미 적응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사는 일은 바쁘고, 그런데도 조금 외롭고, 조금 쓸쓸했지만, 어느 순간 쑤저우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쑤저우에서 맞이한 새해. 나는 어느새 쑤저우에서 사는 일, 을 조금쯤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안정적인 것'을 '지겨운 것'과 쉬이 동일시해버리는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대체 뭘 시작해볼까- 하다가, 중국어를 배우는 일이나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일 같은 건  제쳐두고,


일단 '띠엔동'을 사기로 했다. (电动车. 우리말로 하면 '전동차'이다. 'diandongche'이지만, 보통은 그냥 띠엔동이라고들 부른다.)





중국에 온 지 2주쯤 되었을 때 내가 마주쳤던 풍경. 이 풍경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띠엔동을 사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띠엔동을 사겠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만류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면허증도 없고, 당연히 차를 몰아본 적이 없고, 오토바이 같은 걸 타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실은 자전거도 못 타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띠엔동을 타고 싶다'라는 내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그래서 일단 사면 어떻게든 타게 될 거야-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띠엔동 파는 곳에 찾아갔다.


"저기요. 제가 탈 만한 조그마한 띠엔동 없을까요?"



물론 처음엔 실패하고 돌아왔다. 중국어를 잘 못하는 나와 친구, 둘이서 찾아갔으니까. 그래서 다음엔 중국어 가능자를 대동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에도 실패를 했고, 그렇게 두어 달이 그냥 지나가서, 사람들이 내가 띠엔동 사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갑작스레 세 번째 외출을 감행했고 그렇게 드디어 '띠엔동 있는 여자'가 되었다.




4월 21일,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자그마한 띠엔동이 어쩐 일인지 우리 집 거실에 놓여 있다.



 

이렇게 띠엔동을 사서 오긴 했는데, 이걸 아직 탈 줄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띠엔동을 사면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온 대답은 '10분만 배우면 탈 수 있어요.'였지만. 그건 자전거 탈 줄 아는, 운동 신경도 괜찮은 남자들에게나 적용되는 말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 닷새째 이 띠엔동을 집 안에 둔 채 바라만 보다가, 토요일 오후 드디어 이걸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 안에 작은 터가 있어서 간단하게 연습을 할 만했고, 그렇게 두어 시간 사투를 벌인 끝에 다리를 아래로 내리고도 두어 발짝 전진을 못하던 나는 어느새 두 발을 다 차체에 올리고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띠엔동을 탈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였다.  


(그때 들었던 '바비'의 '텐데'는, 그 뒤로 언제 들어도 띠엔동을 처음 타던 그 날을 떠오르게 만든다.)




하지만 당연히, 모든 것이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자신감이 좀 붙은 나는, 너무 성급하게 띠엔동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철퍽- 하고 넘어지면서 그대로 얼굴과 팔을 갈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상처. 이상하게 나는 다치면, 다친 부위를 사진부터 찍는다;.


첫날은 그렇게 한 번 넘어진 후, 집으로 올라와 대충 약을 바른 후 기절하듯 쓰러져 잠을 잤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던 나는 다음 날 내려가 또다시 연습에 몰두했고,


어제부터 내가 띠엔동 연습하는 걸 보고 계시던,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드디어 내가 띠엔동 타기에 꽤 능숙해진 걸 보시고는 '하하하' 웃으며 박수를 쳐주셨다. (그러게요. 저 좀 기특하지요? 하하하.)


그렇게 주말 동안, 띠엔동 타기에 성공한 나의 다음 미션은 이제 '띠엔동 타고 출근하기'였다. 그래서 일단 내 머리를 보호해 줄 헬멧 하나를 샀는데, 이건 참 이쁘장한 녀석이긴 하지만, 사실 그 뒤로 이걸 쓰고 띠엔동을 탄 적은 한 번도 없다.




결국 장식품이 되어버린 내 어여쁜 헬멧.


그리고 화요일, '저 오늘 띠엔동 타고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모두에게 공지한 후, '혹시 내가 타고 가다가 쓰러지면 좀 구하러 와줘.'라고 따로 부탁도 한 후, 드디어 출근길에 올랐다. 아직 헬멧이 도착하기 전이라 얼굴은 무방비 상태였고, 스타킹을 신고 있긴 했지만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다리도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 두세 번 자빠져야 배워요."


라던, 그 말은 정확하게 옳아서 나는 이번에도 또 한 번 아스팔트 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출퇴근길에 달리는 도로. 사실 쑤저우는 차가 다니는 도로와 띠엔동이 다니는 도로를 저런 식으로 구분해 두기 때문에, 띠엔동 타는 일이 꽤 안전하다. 다른 도시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쑤저우가 특별히 도로를 잘 관리해둔 거라고.


그런데 하필이면 나는, 갑자기 맞은편에서 나타난 다른 띠엔동에 겁을 먹고(원래 정해진 방향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반대편 방향으로 그냥 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고개를 틀다가, 저 철망을 들이박고 그대로 날아가고 말았다.


풀썩, 하고 도로에 떨어졌을 때 내 뒤에서 다른 띠엔동이 달려오고 있지 않았던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떨어진 채, 한 5초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프다,라고 생각했는지 쪽팔려,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냥 멍,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여전히 내가 주저앉아 있는 곳이 도로였기에 그만 일어서자, 생각을 했고, 나처럼 자빠져 있던 나의 띠엔동도 일으켜 세웠다. 사실 이 녀석이 넘어지면서 내 몸 위로 넘어졌는데, 내 띠엔동이 작고 가벼운 녀석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는 좀 많이 다쳤을 것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스타킹이 혹시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한 번 확인을 한 후(다행히 멀쩡했다. 고탄력이라더니, 진짜 튼튼;)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하다가, 어쨌든 출근은 해야 하니 다시 띠엔동을 타고 남은 길을 마저 가기로 했는데-




사고 직후의 내 아쿠아(Aqua. 내 띠엔동 이름이다.) 모습


다시 띠엔동을 타보니 앞머리가 돌아가 있었다. 그러니까 띠엔동을 잘 타지도 못하는 데다, 안 그래도 방금 사고가 나서 겁이 나 죽겠는데, 앞머리마저 돌아가 버려서 제대로 운전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쟤를 수리점까지만 좀 가져다줘.'라고 부탁을 하여 내 품에 들어온 지 열흘밖에 안 된 아이를 다 망가진 상태로 수리점에 갖다 맡겼다.




사실 중국에서 샀으니 중국어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티앤미'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그 이름을 주자마자 사고가 난 탓에 제일 처음 생각했던 이름인 '아쿠아'로 개명해 주었다.


물론 두 번째 사고가 첫 번째 사고보다 훨씬 컸기에, 이번엔 얼굴을 약간 갈고 팔에 피멍이 드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허벅지 윗부분에 깊은 상처가 나서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다. 허벅지 뒷부분은 퉁퉁 부어 올라서 그로부터 열흘쯤 긴 청바지만 입고 다녀야 했다. 그 외에도 긁힌 자국이 꽤 많았지만, '하하하! 이것 봐.'라며 그 상처들을 다 사진으로 찍어 두었지만(;;;), 공개적으로 올리기엔 좀 보기 뭣한 것들이니 그건 그냥 넘어가고-


그렇게 사고가 난 후, 다시 내가 아쿠아를 타고 출근에 성공하는 데까지는 무려 한 달이 걸렸다는 것만 밝혀 두자.





드디어 아쿠아를 타고 출근에 성공한 날. 기념으로 찍은 사진. (사고가 나면서 망가졌던 앞 바구니를 바꾸었다.) 그동안 너도 나도, 참 많이 수고했구나.




그리고 저 날로부터 다시 또 한 달이 더 지난 지금, 나는 아쿠아를 잘 타고 다닌다. 출퇴근길에는 늘 아쿠아와 함께지만, 그 뒤로는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았다. 가끔은 얘를 타고 멀리 있는 마트도 다니고, 괜히 혼자 도로를 달려 보기도 한다. 뒤에서 오는 차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노래를 들으며 타지는 않지만, 날씨가 좋은 날엔 노래를 듣지 않아도 내 입에서 절로 노래가 나온다.




처음 중국에 와서, 띠엔동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중국 아가씨들을 보며,


"나도 저거 살래! 저거 사서 미니스커트 입고 하이힐 신고 띠엔동 타는 멋진 언니가 될 거야!"


라고 농담처럼 친구에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실제로 나는 종종 미니스커트를 입고(속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사실, 띠엔동은 다리를 얌전히 모으고도 탈 수 있다.), 하이힐을 신고 아쿠아를 잘 탄다. 우여곡절 많았지만, 이제 아쿠아는 중국에서 내가 새로 만든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 애가 생겨서 중국 생활이 좀 더 많이 즐거워졌으니-


역시, 새로운 걸 해보는 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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