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7일, 백칠십여섯 번째 날
"그럼 우리 오늘 어디 가?"
중국에 살고 있는 건 나지만, 중국을 어떻게 여행할지 계획을 세우는 건 내가 아니다. 추석 연휴에 연차 같은 것을 며칠 더해 상하이로 놀러 온 친구는 이곳으로 놀러 오면서 확실한 여행 계획까지 세워서 왔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친구 앞에 도착한 내가, '난 상하이에 대해 1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니,
"우린 오늘 루프탑 바(rooftop bar)에 갈 거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루프탑 바라면, 상하이의 야경을 즐기러 갈 모양이다. 사실 이 도시의 야경에 대해서라면 이미 알 만큼 알지만, 그래도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좋은 건 보고 또 봐도 좋은 거니까. 그리고 계획을 세우기 싫은 자는 남이 세운 계획에도 반대하지 않는 게 옳은 거니까.
어떤 여행지를 좋아하느냐는 그 취향에 따라 다른 법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아름다운 야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상하이에 도착한 이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이 도시의 야경을 즐기는 일이다. '세계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TOP 10' 뭐 이런 것에는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든 상하이 의야경은 한동안 '우와-!'하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그러니까,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화려하다'이다.
처음 밤의 상하이를 마주한 건, 유람선 위에서였다. 상하이 야경을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가장 좋은 방법 두 가지를 나에게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는 황푸 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루프탑 바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강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이 빛나는 야경을 구경해도 좋지만, 그러기엔 상하이가 너무나 북적인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와이탄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주말의 와이탄을 겪어본 나로서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중국인들의 '인해전술'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도보로는 상하이의 야경을 즐기고 싶지 않다.
-황푸 강(River Hunangpu):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상하이에는 황푸 강이 있다. 상하이의 중요한 수원이다.
-와이탄(Wai Tan): 오늘날의 상하이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지역이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난징조약을 통해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고, 다섯 개의 항구를 개항할 때 그곳에 포함된 도시가 바로 상하이였다. 그로 인해 상하이에는 서구 열강의 자본이 들어왔고 곧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각국의 영사관과 기업들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함께 들어온 서구 열강의 은행들이 와이탄에 자리 잡으면서 이곳은 상하이의 금융가로 성장하였다. 와이탄이 ‘세계건축박람군’이 된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서구 열강이 자신들의 건물을 세울 때 각자 자기들의 양식에 따라 건축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역사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와이탄은 이토록 아름답다.
상하이 야경의 핵심은 황푸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풍경과 서쪽의 풍경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강의 동쪽에 위치한 '푸동'에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동방명주'를 비롯하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건물인 '상하이 타워', 흔히 '병따개 건물'이라 불리는 '상하이 세계금융센터',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진마오 타워' 등이 어우러져 마치 아이언맨이 날아다닐 것만 같은 미래 도시적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유람선이 한 바퀴 돌아 황푸 강의 서쪽인 와이탄으로 돌아서면 고풍스럽기 그지없는 중세 유럽 건물들이 줄을 지어 서 있어 마치 백 년 전의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동쪽과 서쪽 중 어느 쪽의 풍경이 더 아름다운가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백 년의 시차를 보여주는 이 도시의 야경을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된다.
-동방명주(Oriental Pearl Tower): TV 송신탑 역할을 하고 있는 건물로 '중국5A급여유경구'로 지정되어 있다. 즉, 중국 내 최고의 명승지, 관광지에 속한다는 뜻이다. 상하이 내에서 '중국5A급여유경구'에 지정된 곳은 동방명주 외 '상하이 야생동물원'과 '상하이 과학관'이 있다. 눈에 확 띄는 분홍색 구슬 모양을 하고 있어 푸동 내 어디서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가장 높은 건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높이는 468m로 주변에 있는 상하이 세계금융센터(492m), 상하이 타워(632m) 보다 낮다. 건축학적으로는 어떤 평가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아하는 건물이다.
-상하이 타워(Shanghai Tower): 아래층에서부터 위층까지 건물이 꽈배기처럼 꼬이며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바람에 의한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자 할리파(829.8m),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은 ‘도쿄 스카이트리(634m)’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를 가진 건물은 바로 이 상하이 타워이다.
-상하이 세계금융센터(Shanghai World Financial Center): 건물 꼭대기 모양의 독특한 모양 때문에 ‘병따개 건물’이라고도 불린다. 492m 높이의 건물로 2009년에 완공될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나 바로 옆에 상하이 타워가 들어서면서 그 타이틀을 빼앗겼다.
-진마오 타워(Jin Mao Tower): 421m 높이의 건물로 상하이 세계금융센터(492m)가 지어지기 전까지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이 건물의 68층부터 87층까지에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 상하이’가 위치해 있는데 이 호텔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텔이기도 했다.
상하이 푸동의 마천루를 잘 보여주는 사진. 빛을 내고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이 '상하이 타워', 바로 옆이 '진마오 타워', 그 옆이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이다.
이렇게 배 위에서 밤의 상하이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루프탑 바에 올라가 칵테일 한 잔쯤 시켜놓고 여유롭게 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 워낙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보니 도시의 동서남북 모두에 괜찮은 루프탑 바가 있는데, 그중에서 친구가 선택해 온 건 푸동의 야경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리츠칼튼 상하이 푸동'의 59층에 있는 이 루프탑 바는 동방명주의 거대한 구슬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동방명주와 너무 가까이에 있다 보니 오히려 사진을 찍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꼭 리츠칼튼에 묵지 않아도 바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아주 약간의 복장 규제는 있으니 비치 샌들 같은 걸 신고 가서는 안 된다.
이곳은 야경이 일 다 하는 바라서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칵테일이 맛있다는 것이 이 바의 큰 장점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진 않는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큼 훌륭하지도 않았다. 가격은 110~190원(한화로 18,000~32,000원) 정도로 그 이름값에 비하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루프탑 바의 야외 테라스 모습. 추가 비용 없이도 야외 테라스 좌석에 앉을 수 있다고 하는데, 동방명주에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우르르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야외에 앉으면 안락한 시간을 보내긴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야외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이 바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렇게 칵테일을 한 잔씩 하고 내려오니 이런 상하이가 서 있다. 내가 일하는 상하이는 늘 목을 칼칼하게 만드는, 어쩐지 늘 먼지가 날리는 것 같은, 애정 어린 목소리들이 가득하지만 늘 나를 지치게 만드는 도시인데.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찾아온 상하이는, 이렇게 반짝이고, 이렇게 눈부시다.
빌딩 숲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 상하이의 야경은 어느 정도 진부하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저렇게 계속 높이 치솟고 있는 건물들, 그 건물들을 올려다보는 것이 뭐가 그리 즐겁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에는 새롭거나 우아하거나 품위 있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그리고 내게는 상하이 역시 그런 도시이다. 그러니까 상하이에서 지친 사람들이 있다면, 이 도시의 밤이 보여주는 모습에 조금은 위로받고 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