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 만난 물개 Jan 09. 2023

1월 6일 금요일의 서귀포 앞바다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

2023년 1월 6일 금요일의 바다


오늘은 먼저 반성 한번 하고 시작해야겠다.

고작 수트 하나 바꿔 입었다고, 공기 소모량이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나의 다이빙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입은 구형 드라이 수트 때문인지, 꽤나 오랜만에 물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조금 불편하다는 느낌이 다이빙 내내 이어졌다.

최근 운동을 게을리했고 먹는 양이 늘어서인지

웨이트 무게도 약간 부족한 듯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내피를 한 겹 더 입은 탓도 있겠지만, 고작 얇은 티셔츠 한 장 더 입었을 뿐이다.

그걸 변명이라고 내밀기엔 내 다이빙 로그수가 부끄럽다.



오늘 착용한 웨이트 6kg,

다이빙 횟수 3회, 입수 시간 10:20, 11:40


모든 바다에는 바닷물의 흐름, 즉, 조류가 흐른다.

조류는 지구의 자전과 태양과 달의 인력에 의해 방향과 세기가 규칙적으로 바뀌는데,

그중 제주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편이라 바다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에겐 꽤나 중요한 정보다.

이 나름의 규칙을 수치화해서 나타낸걸 물때라고 부르는데,

오늘의 물때는 7 물, 달의 모양이 보름달에 거의 근접해있어 대체로 조류가 매우 센 시기로 통한다.

이런 날에는 갑자기 폭발적으로 강해질지 모르는 조류에 항상 대비하며 다이빙해야 한다.


첫 입수, 조류는 거의 없었다.

조수 그래프 상 아직 정조(조류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 물의 흐름이 잠시 멈춘다)에 미치지 못하는 약간 빠른 시간이었는데, 실제로 물은 멈춰있었다.

20분쯤 지나고 나니, 물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나와서 조수 그래프를 보니, 이 시기가 그래프 상 가장 최고점, 정조 시간이었다.

두 번째 입수했을 때에는 조류 방향이 명확히 바뀌어 적당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래프상으로는 최고점에서 꺾여 내려가기 시작하는 위치,

그래프에 비해 조류가 그래도 있는 편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프보다 실제 바다가 조금씩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큰 차이는 아니고, 20분 정도 앞서서 바다가 변했다.

앞으로 계속 관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만조 시 물 높이 264, 제주 서귀포의 문섬 기준으로 섬의 플랫폼과 수위가 딱 맞는 정도였다.

수치가 이보다 높으면 플랫폼이 물에 잠긴다는 의미.

배와 섬의 높이차가 너무 커 섬에 내리기에도 쉽지 않다.

물의 높이는 물때표를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오늘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바다에 빛도 쭉쭉 잘 들어오고, 물도 꽤나 맑았다.

근래에 바람이 좀 잦아들어서 그런 듯하다.

일반적으로 바람이 불지 않고 햇살이 좋으면 시야가 좋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수중 시야의 공식은 전혀 감이 안 온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시야의 비밀은 무엇일까..?

정말이지 직접 들어가 보기 전까진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심지어 물이 맑다가도 1시간 만에 뿌옇게 떠버리기도 하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1회 차 다이빙은 상쾌하게 맑은 물이었던 바다가

2회 차 다이빙에는 뿌옇게 바뀌어 버렸다.

불과 1시간 만에.

어렵다 어려워...

들물일 때와 날물일 때,

혹은 정조일 때와 날물일 때 중 전자의 시야가 더 나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물론 이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추측이다.

이것도 앞으로 지켜봐야겠다.


오늘 다이빙 중 상당히 큰 문어를 봤다.

이 친구는 크기가 커서 그런지 나를 봐도 굴 속으로 깊이 도망가지 않고

상당히 큰 틈에 자리를 잡고 있어 주었는데, 덕분에 긴 시간 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문어는 산란기가 4~6월이고 문어의 제철은 11월~4월이라고 알려져 있다.

11월~4월, 즉, 겨울은 문어의 몸집이 커지는 성장기이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문어 굴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주변 물고기들이 문어의 위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사진이든 영상이든 촬영을 위해 문어 근처에 조금 머물다 보면

물고기들이 문어 굴 주위를 얼쩡거리면서 꽤나 몰려든다.


오늘은 자리돔들이 몰려들었는데,

혹시 이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혹은 내 행동이 이들 간의 관계에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일까??

예를 들면 경계대상을 감지한 문어가 내뿜은 특정 호르몬이라든지 냄새, 혹은 소리에 반응하고

물고기들이 몰려든 건 아닐까??


문어에게 크게 공격성을 보이거나 침입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듯한 물고긴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호의적인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문어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물고기를 밀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궁금하다. 이들 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도와주러 온 지원군인가, 문어의 허점을 공략하여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접근한 또 다른 경계대상일까.


바다의 신비는 끝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중여행자의 바다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