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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ul 12. 2021

길어진 취준. 나를 일으킨 몇 가지


취준이 장기화되면서 무기력증이 자주 찾아왔다.


조금씩 찾아온 무기력증은 최근 조금 심한 존재감을 보였다. 10시, 11시로 점점 늦춰지던 기상 시간은 어느덧 짙은 회피성을 띈 채 자주 12시, 오후 1시까지도 미뤄졌다. 공백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뭐라도 하던 내 일상에는 '이거 준비한다고 되겠어?' 회의적인 생각이 대신 자리했다. 약속을 피하는 일도 늘었다. 취업도 안 되면서 취업에 대해 떠드는 내 모습에 '자기혐오' 비슷한 감정이 들어 견딜 수 없어서다. 대학 시절, 누구보다 취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스펙이 어쩌고' 떠들어 대던 나의 취준이 늦어지면서 '열정적인 내 모습'에 대한 이상한 반감이 드는 거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종일 침대에 누워 나에게 비난을 퍼부은 적도 있다.


그동안 그럴듯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온 것에 비해 자기혐오, 열등감, 무력감과 같은 감정이 자리하는 데에는 무섭도록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디지털미디어시티의 반짝반짝 멋진 방송국 건물들을 보면서, 광화문에 즐비한 유수 기업 건물들을 보며 '나도 나중에 꼭 이런 멋진 곳에서 일해야지!' 마음 벅차 다짐하던 새내기 시절의 나는 취준생이 되어 '연봉 XXXX만원 수준의 정규직 자리면 준수하지' 싶다가, 이제는 사람 구실이라도 하며 지낼 수 있게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라는 장기 취준생에 접어들었다. 때때로 성취의 순간들을 회고하면서 '나도 잘하는 게 있는데' 답답해했다. 그렇게 답답해만 했다. 이런 상황을 가열차게 뚫고 나가는 대신, 병적인 감정들에 내 일상을 내어주는 나 자신이 그래서 더 한심했다. 이 정도 수준의 위기 대처 능력으로 일자리를 얻겠다니. 어림도 없지. 자조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강한 '희망' 가까이에 있었다.


공고를 발견하고, 서류에 합격하고, 필기, 실무 면접, 임원 면접까지 가면서 조금씩 품은 희망이 어느 순간 결국 '탈락'으로 깨지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맞닥뜨릴 때. 그때가 힘에 부쳤다.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한 거겠지' 애써 포장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이내 탈락을 하게 되면 '다시, 또 다시' 힘을 내어 원점으로 몸을 옮겨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끝내 합격장을 받지 못한 나는 그동안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공백기'라 부른다. 그동안 주변에서는 합격 소식이 들려온다. 그 얼마나 힘들게 쟁취한 결과인지 알기에 박수를 보내게 되지만, 어느덧 저마다의 분야에서 자리 잡는 친구들이 늘면서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이지 새빨간 거짓말이 될 테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떨어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힘을 낼 자신이 도저히 없겠다'고 생각하며 절실하게 임했던 면접이 하나 있었다. 나랑 잘 맞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A4 열 몇 장 짜리 분량의 면접자료를 만들고, 새벽 댓바람부터 24시 미용실에 찾아가 머리까지 받았다. 새 블라우스와 구두까지 한 번 극성스럽게 대여해봤다. 일상의 모든 걸 중단하고, 일주일이 어떻게 흐른 지 모를 만큼 몰입해서 면접까지 무사히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간 숱한 탈락을 봐왔지만 마음이 정말 쿵하고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탈락일 뿐인데, 내가 또 최선을 다해 진심이었던 탓이었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썩 희망적이지 못한 점괘까지 전해 들었다. 아무리 발악한들 빠져나올 수 없는 안갯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돌리는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쳇바퀴일지 언정, 변화로 나아가는 모든 행위에는 결국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새가 알을 부수고 나와야지만 날아오를 수 있는 것처럼, 어쨌거나 부리로 껍데기를 조아야 하는 건 알 속의 새뿐이란 말이다. 그런데 가열차게 껍데기를 조아야 하는 이때, 무기력증이 왔다. 그전부터 틈틈이 내 일상에 안부를 물어오던 무기력증은, 내 일상을 아주 정복해버릴 기세로 무너진 틈을 타고 들어왔다. 어떻게 다시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지, 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혹처럼 생겨버린 공백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해결을 기다리는 여러 생각들은 과제처럼 쌓여있기만 했다. 문제들을 해결해 줄 나는 정작 누워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었다.




혁신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극복 가능할 난국이구나 생각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공모전 1등처럼 대단한 무엇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의외로 간단하게 날 일으킨 동력은 '카카오톡 메시지'와 '마라탕 한 그릇'에 있었다.


얼마 전, 나는 대학 친구로부터 한 메시지를 받았다. 제주 여행 중인 한 친구는 자기가 제주도에서 기도를 했다며, 다 같이 대박나자고 사람 셋 있는 단체 톡방에 문자를 보내왔다. 제주에서 한 잔하고 술김에 그냥 한 말일 수 있다. 그 이유가 뭐가 됐든 방구석에서 죽어가는 내가 봤을 땐, 다 같이 잘 되자는 평범한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무심하게 던진 평범한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내 인생에 '야! 이렇게 무너지지는 말자' 알람을 울려주는 것 같았다.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곳에서나마 이렇게 전해 본다. 너가 제주에서 쏘아 보내준 메시지 하나가 종일 누워 있던 나를 일으켜줬다고, 고맙다고 말이다.


기대했던 면접에서 탈락 통보를 받고, 친구들과 계획 중이던 한 일정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며 이리저리 둘러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이번에는 15년 지기 친구가 대뜸 마라탕을 먹을 사람이 있냐며 물어왔다. 그 톡방에서 정황상 마라탕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약속을 피했고, 그런데 또 어쩌다 마라탕은 같이 먹었다. 유난히 맛있었던 마라탕을 한 그릇 비우고. 그 친구는 자기가 한 번에 계산하겠다며 돈을 나중에 보내달라 했다. 그리고 후에 정산하자는 내 말에는 본인이 사겠다 했다. 그제야 이 모든 수순이, 의기소침해진 나를 위로해주는 그 친구만의 방식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말이다.




빠져나갈 기미가 안보이던 진한 비관과 무력감을 뚫고 들어온 건, 그저 '따뜻한 마음'이었다.


가장 평범하지만 따뜻한 호의가 '그래도 이렇게 주저앉진 말아야지' 생각하게 했다. 하염없이 누워만 있던 나를 간단하게 다시 일으켜줬다. 별 볼 일 없는 내 주변에 남아 있는 그 따뜻한 마음들을 은둔하며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언제라도 다시 무기력증이 찾아올 때면 가고 싶은 회사 로고, 직장인 브이로그 이런 거 말고 마음 따뜻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봐야겠다. 평범한 호의였을 테지만 나한테는 더없이 따뜻했던 작은 마음들을 그냥 저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렇게 살아 설명하는 사람 말고, 너 요즘 어때 물어봐줄 수 있는, 들여다 봐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절대로 멈추지, 또 무너지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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