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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Feb 11. 2021

이런 설렘, 고마워요 '런 온'

조금 천천히 '런 온'을 완주하면서


JTBC 수목드라마 '런 온'


부족한 문장으로는 담기에는 너무 큰 작품, '런 온'. 따뜻했다고만 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하다. 그저 아쉬울 것 없이 좋았다고, 막 주접을 떨어야만 충분할 것 같은. 그런 '런 온'을 돌아본다.


1. 사랑이 전부는 아냐
사진=JTBC '런 온' 홈페이지


'런 온'은 사랑이 전부인 여타 드라마들과는 결부터가 달랐다. 임시완과 신세경이라는 선남선녀를 두고도 고집스러울 만큼 연애에 집착하지 않았다. 기정도 의원의 훼방으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연인 기선겸에 "나는 내가 더 소중해서 그냥 포기할래요"라며 이별을 선언한 오미주의 말은 꽤 상징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라고 전하는 듯 했으니까.


'신데렐라 스토리'로 오해할 만한 여지는 있었다. 금수저 기선겸(임시완)과 자수성가형 오미주(신세경) 커플부터 재벌 CEO 서단아(최수영)와 대학생 이영화(강태오) 커플까지. 말하자면 재벌과 서민으로 나뉠 그들의 배경이 그랬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왕자님 기다리는 신데렐라, 공주님 기다리는 온달은 없었다. '런 온'은 끝까지, 심지어 주변 인물들까지도 빠짐없이 각자의 삶을 지켜줬다. 각자, 또 함께 잘 어울리는 결말을 맺으며.


그래. 이런 게 진짜 해피앤딩이지.



2. 어쩜 이렇게들 매력적이세요


무해한 기선겸, 사이다 시원하게 날려주는 오미주, 완벽한 듯 하지만 결핍이 보이는 서단아, 성장하는 이영화. 모두가 매력적이었지만 '런 온'에서는 주변 인물들 매력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이들은 '런 온'에서 신스틸러나 감초 정도로만 존재하지는 않았던 듯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뭔가 핵심적인 온기를 전해왔다.


나한테는 특히 육지우와 박매이가 그랬다.


기억에 남을 대화. 사진= JTBC '런 온' 방송화면 캡처


잘나가는 배우이자 기선겸 엄마인 육지우(차화연)는 박매이와 쌍두마차를 이루는 최애 캐릭터였다.


이 캐릭터의 매력은 명확한 선택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었다. 엄마보다 배우로서 삶에 전념해온 그녀는 주체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남편 기정도 의원의 선거 유세에 '예쁜 병풍' 노릇하면서도 꽤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때로는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어쩌면 과도기적 인물. 그럼에도 육지우는 배우로 산다. 동시에 엄마보다 배우로서의 삶에 전념한 자신의 선택을 깔끔하게 인정한다.


그런 육지우에게 "이거나 먹고 떨어지"란 식의 전통적인 클리셰는 없었다. 그녀의 매력이 정점에 달한 것은 15화 중 오미주와의 대화에서였다. 오미주는 육지우에 "다 알고 오신 줄 알았다" 말한다. 기선겸과의 연애를 말하는 듯했다. 그런 오미주에 육지우는 "알고 왔지"라며 "태리가 한감독 연출이랑 번역가님 자막 덕분에 비행기도 많이 타고 레드카펫도 원없이 밟아봤다고 그러더라고" 이야기한다. 이어진 대화에서 육지우는 "(커피차) 보내줘요. 선겸이랑 같이" 말한다. 몇 번이고 돌려본 장면.


기선겸과 오미주, 두 사람이 특별한 사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오미주를 오롯이 자신의 팬, 함께 비즈니스 하는 번역가로서 조우하겠다는 의도가 잘 보였다. 당신이 누군가의 아내, 엄마보다는 '육지우'라는 이름 석자로 살아오길 택했듯 어떤 신조, 매너를 타인에게도 그대로 지켜줄 줄 아는 사람 아니었을까.


단지 잘 나가서, 뻔하지 않아서 멋진 사람은 아니었던 선겸이 어머니. 아니, 지우 언니.



사진= JTBC '런 온' 방송화면 캡처


그럼에도 최애 캐릭터는 박매이(이봉련)였다. 다들 기선겸, 오미주를 외칠 때 홀로 박매이를 외친 사람, 저예요!


박매이는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면 가장 완전하고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심지어 잘하면서, 인간적인 매력도 상당한 사람. 대놓고 상냥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동거인 오미주를 위하는 마음도 예뻤다. 오미주가 방황할 때면 한 수 알려준답시고 말뿐인 조언을 건네기보다 그저 요리나 하자며, 진짜 필요한 게 뭔지 들여다봐주는 사람. 느끼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온기가 너무 매력적인 박매이였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좀 더 욕심부려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JTBC '런 온' 방송화면 캡처


동거인과의 삶을 묘사하는 방법도 좋았다. 예전에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저자)' 를 읽었는데, 그 책을 통해서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로서 동성 동거인도 가능한 선택지임을 새로 깨달았었다. 그게 꼭 사랑으로 묶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런 온'에서 오미주와 박매이가 딱 그랬다. 둘의 공간은 결혼하기 전 잠시 머물러가는 자취방, 임시보호처 같은 곳처럼 묘사되지 않았다. 서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가족으로 함께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곧 떠날 객식구같지 않아서 덩달아 포근했다.


'런 온'에 박매이가 있어서, 오미주의 동거인이 박매이여서 드라마가 더 따뜻했다.



3. '런 온'처럼 가자


사진=JTBC '런 온' 홈페이지


'런 온'을 보면서는 담아내려는 이야기가 참 많다고 생각했다. 주변 인물들까지도 저마다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더욱 그렇게 느꼈을 거다. 이 작품을 좋아하지만 정확히 왜 좋았는지 묻는다면 유독 답하기 망설여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런 온' 안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면면을 지켜보면서 그저 마음 따뜻했던 기억만 남아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저마다 잘 살아가겠다는 데 무슨 결론과 담론이 필요할까. 다만 현생이 힘들어질 때면 언제든 다시 '런 온'을 꺼내 볼 생각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니까. 난 오미주도 누구도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는 나조차 또 다른 오미주인 것 같아서 '한 번 뛰어볼' 용기가 생기는 것만 같다.


'런 온'은 이렇게 따뜻했던 기억으로 안녕이지만, 가끔 나의 케렌시아가 되어주기를. 안녕(Bye and Hi), 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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