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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당 Nov 02. 2021

상사의 궤적

Developer V


대학교 2학년 때 토론토 다운타운에 위치한 회사에 database 관리 인턴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SQL 프로젝트를 주로 하려고 했는데, 하는 프로젝트마다 캔슬되어서 결국 4개월 동안 공부하고 사내식당 가서 수다 떠는 게 다였지만. 


boss의 rank는 Developer V 였다. Level 5 developer 인지 이게 뭔 말인지 본인도 모르겠다더라. "But I work like a victim." 바빠 보이긴 하던데 실제로 바쁜 것 같았다. 아저씨 수염도 안 깎고 말이야. 

"나는 이 비즈니스 캐주얼한 복장도 싫고 일도 싫어. 이 회사는 기술적인 발전은 없지만 돈이 많아서 급여는 높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참고 일하는 거지. 너도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은 상당히 높지 않니?"


이 아저씨는 돌려 말하는 게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이 한 달에 $4800 받는 게 적은 돈은 아니지. 그걸 비트코인이나 테슬라에 넣었어야 했는데. 


그가 지금 직업을 싫어하는 이유도 참 다양했다. (가감 없이 인턴한테 말한 것도 웃기지만)

1. 옷이 갑갑하다. 

2. 하는 일만 한다.

3. 보고 체계가 복잡하다.

4. 고장 났을 때 사람들이 기술자 V를 찾는다.

5. 검색이 안되거나 기계가 고장 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자 V에게 한다.



 사람들이 너를 보면 불평만 늘어놓고 행복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넌 아직 모를 거야.



2학년짜리한테 뭘 바라는 건지. 

아무튼 나는 인턴 하는 동안 어느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어느-라고 말하는 건 대체 누구였는지, 몇 번째 애인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그렇다) 헤어진 그날 밤에 술 잔뜩 마시고 출근해서는 "보스! 어제 남자 친구랑 헤어졌는데 지금 숙취가 어마어마해요" 라며 나 오늘 일 안 할 거다 그렇게 알아라 라며 책상에 드러누웠다. V아저씨는 그날 시간이 많았는지 내 데스크로 와서는 술냄새가 심하네 근데 나도 20대 때는 실연도 하고 그랬다? 라면서 오늘은 일 안 해도 되니까 바깥공기 좀 쐬라고 했다. 그래도 월급은 나오니까. 학생의 패기인지 실연의 아픔인지 술기운인지. 단풍잎이 가득한 회사 주변을 걷다가 두통약도 먹다가 하늘도 봤다가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월급은 나오니까.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생각해보면 그 실연도 수많은 이별 중에 하나였고, 이 인턴도 앞으로 있을 수많은 프로젝트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결국 이 4개월의 인턴기간 동안 아무 프로젝트도 하지 못한 채 끝났다. 어쩌면 보스도 이 경험에서 가져가야 할 건 전공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그냥 경험 그 자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도저히 시킬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했고. 


경험으로 깨닫기를 보스가 바랬을지는 모르겠는데,

당신의 일중에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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