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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당 Dec 07. 2021

코어

마음을 교체할 때

월급이 들어왔다면 서랍 속에 두지 말고 시장에 던져놓아라.

일정표에 빈 공간이 없게 해라. 

욜로는 가고 갓생을 살자. 

시간관리를 잘 하자. 


그렇게 너는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기간이 아까웠는지 새로운 사람을 잠시 만났고, 연인을 믿지 못한 나는 만날 때마다 너를 추궁했다. 왜 연락이 안 되는지, 뭐 하고 있었는지, 누구랑 있는지 매번 사진을 찍어보네라는 나의 생떼에 너는 지쳤을 법도 하다. "제가 예전에 크게 잘못한 게 있어서요." 라며 직장동료에게 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겠지만 사실 그 큰 잘못을 멋쩍게 넘겨야 한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남자라면 한 번쯤 바람 필수 있지 라며 가랑이에 뭐 하나 달린 분들이 웃으며 말했을 땐 남자란 그런 것인가 생각했었다만,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자존심이 망가지더라. 그 "한 번쯤" 일어난 일탈을 나는 떨쳐버리지 못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탓에 너와의 관계는 피로만 쌓였다. 


퇴근하고 왠지 중식이 먹고 싶었다. 미니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고 나와 해 지는 하늘을 보며 저녁시간의 약간의 매캐한 매연과 여름 바람이 내 옆을 스쳤다. 해가 지고 하늘은 어스름해질 때, 바람이 조금은 서늘하고 도로엔 퇴근 중인 사람들로 가득한 시각.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황혼의 중간에서 갑작스레 너와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달이 뜨며 마주오는 사람의 얼굴이 구별이 안 갈 때 나의 마음도 잠깐 흔들렸나 보다. 헤어지자. 4년의 연애를 끝내는 건 이렇게도 쉬운 일이었다.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사람이 말 한마디로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 다만 가랑이에 뭐 달린 종족은 당연히 바람 한번 핀다 라는 가정이 보편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다면 나는 앞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할 것이다. 그게 너의 의도가 되었든 안되었든 나의 기록에서 너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이 되었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로 관계는 끝이 났다. 

헤어지자 말하기 전까지 무수히 시험받은 내 마음이 남았다. 




"평소엔 괜찮았는데 지난 주말에 조개 딱딱한 거 먹고나서부터 씹을 때 찌릿하게 아파요."


진단명: 치수가 포함된 치아 파절. 

치료계획: 신경치료 후 크라운. 치료 후에도 저작 시 불편감 있을 수 있음. 지속적 불편시 발치 안내드림.


한번 잘못 씹어서 이렇게 돈이 많이 깨지네요- 라며 슬퍼하시는 분들이 있다. 사실 한 번만 그러시진 않으셨고 여러 번 반복되어왔지만 하필이면 재수 없게 조개가 범인으로 걸린 거다. 지금까지 계속 세게 씹으셨고 단단한 음식을 드셔서 치아에 무리가 가해져 왔는데 아뿔싸 조개가 하필이면 걸린 거다. "내 이빨은 멀쩡해!" 라며 소리를 지르셔도 저는 다른 할 말이 없습니다. 환자분은 치아를 학대하며 살았습니다. 


신경치료를 하고 안을 메꾸고 크라운을 씌우더라도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지면 금은 뿌리 쪽으로 더 진행된다. 속을 아무리 단단한 재료로 붙이고 바꿔도 온갖 지랄을 해도 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상처는 깊어진다.




마음을 내다 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내 마음을 돌보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내가 생리 때 화를 덜 냈더라면 하고 후회해도 돌아오는 건 없더라.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지나간 시간보다 다음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청소하는 일이다. 똥차 가고 벤츠온다는 말은 상황에 맞지 않다. 너는 나에게 벤츠였으나 시기와 기회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서로가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 있었을 뿐이다. 


나는 요새도 코어를 단단하게 만드는 운동을 하고 있다. 

너도 그리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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