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INTJ
장래희망은 언제나 의사
의사가 뭐하는지 쥐뿔도 모르는 나이에도 의사가 최고지!라는 말에 속에 의사만이 마땅히 이루어야 할 꿈이라 여겼다. 초등학생이 뭘 안다고 "의사가 될래요!" 하며, 중학생이 뭘 안다고 "나는 의사가 여전히 되고 싶어요!"라고 할까.
세일러문은 좋아해도 내가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을지는 알 리가 없다.
아무튼 나는 나대는 걸 좋아하고 어울리지 않는 교복 치마를 입는 쇼트커트의 여학생이었다.
유학을 떠났다. 그냥 기회가 있어서.
대학교에서 컴퓨터를 공부했다. 그냥 그게 좋다 그래서. 돈도 잘 번다니까 겸사겸사.
근데 입학은 잘했는데, 코딩을 한 번이라도 해봤어야지
LINUX라느니 ubuntu라느니 무한루프라느니 list 라느니
돈 잘 버는 건 알겠는데 하다 보니까 알겠더라. 이건 내가 할게 아니다.
교수님 저는 프로그래밍이 적성에 맞지 않아요.
근데 뭐 어떡해, 졸업은 해야지. 전과하자니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래서 그냥 했다 밤을 새 가면서.
잘하는 사람들과 나를 열심히 비교해가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졸업만을 기다렸다. 청춘은 행복하지 않았어.
친구들이 졸업 후 실리콘밸리에 가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갈 때 나는 도망치듯이 한국에 왔다.
" 엄마 이건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아- 이건 다 엄마 탓이야. 엄마가 이걸 하라 그래서 나는 GPA도 안 나와서 의사도 못되잖아. 내 인생은 망했어. 꼭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복수할 거야. "
이런 말을 씨부리면서 혼자 독서실에서 원망을 하며 눈물을 짜고, 집안의 경제를 파탄 내겠다는 마음으로 아빠 카드를 썼다. 좀 많이. 아저씨 카드만 내놓으세요 전 아저씨 누군지 몰라요.
치전원 합격통보를 받고 이제야 내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는구나 기뻐했다.
그런 줄 알았지. 근데요.. 일하다 보니까요..
교수님 저는 환자랑 대화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아요.
환장할 노릇이다.
돈 잘 버는데 적성에 안 맞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다른 돈 잘 버는 직업을 택했더니 또 적성에 안 맞는다.
아니 교수님, 공부랑 손만 좋으면 되지 소셜 스킬도 필요하다고는 안 했잖아요. 네이버 유츄브 보고 와서 자기가 맞다 하는 환자도 상대해야 한다고는 안 했잖아요. 니 말이 틀리다 하면 네이버 리뷰 별점 테러하는 환자한테도 친절하게 해야 하고, 옆 치과는 임플란트 60만 원인데 왜 너네는 120만 원이냐 하는 사람한테는 뭐라고 해야 하나요. 아 쟤네는 떰핑이에요! 이럴 순 없잖아요. 마취를 덜 하면 아프다 하고, 마취를 많이 하면 마취 너무 오래가서 불편하다 하는 사람들은 어째야 하나요.
길 건너 떡볶이는 3천 원인데 왜 이 집 떡볶이는 5천 원인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냐고요.
아무튼 난 이거 적성에 안 맞아요.
아씨, 30 중반이나 되고 석사까지 했지만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