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라는 사람들

입학 전 담임 선생님이 보낸 편지

by 단단한 이

작년 8월 어느 주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지.

너의 이름으로 온 편지,

너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온 첫 편지


나에게는 너무 낯선 너의 반, 1A

1학년 1반이 익숙한 나에게

알파벳이 붙은 반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

거기에 Waldmausklasse (들쥐반)라니,

똥강아지의 애칭이 익숙한 나에게

들쥐는 또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


너는 그렇게 한 마리의 작은 들쥐가 되었다.

선생님이 보내 준 들쥐 스티커를 붙이고

첫날 등교를 하면

다른 작은 들쥐들을 만날 수 있는 거였지.


네 친구들을 알아볼 수 있는 귀여운 아이디어,

나는 참 좋았다.


선생님이 함께 보내 주신 너에 대한 기초조사서

이름, 생일, 주소,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등등

그림으로 그리거나 독일어로 적는 것들이었는데,

그걸로 네가 글씨를 쓸 수 있는지,

소근육은 얼마나 발달하였는지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라, 나는 그것도 참 좋았다.


네가 보고 쓸 수 있도록 선생님 것도 함께 보내 주셨는데 너는 한눈에 선생님께 반해 버렸지.

너무 오래전에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너처럼

Waldmaus가 되고 싶었지.


나는 이제 여기에서 너와 함께 학교를 다닌다.

우리는 함께 학교를 다니며

함께 이곳 사람들을 만나겠지.

그렇게 이곳의 삶을 살아가겠지.


네가 설레는 만큼 나도 그렇다.

네가 1학년이면 나도 1학년

나는 그렇게 너와 함께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아이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여기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평범한 공립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태어날 때부터 두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자라고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늘 공평하게 사랑해 주는 중이다.


아이처럼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의 아빠, 그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이에게 해 주는 모든 것은 그가 어릴 때 부모님께 원했던, 그 어떤 것임을 얼마 전 나에게 고백하였다. 몇 십 년 전 정착을 위해 허덕이던 가난하고 힘든 부모에게 차마 시간을 내 달라 말하지 못했던 한 아이의 소망이 담긴 시간, 그는 지금 아이에게서 그 시간을 선물 받는 중이다.


아이의 엄마인 나는 이곳에 온 지 이제 10년 남짓 되었다.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아이를 여럿 갖고 싶었지만 그런 것은 하고 싶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와 준 것만으로 고마워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이를 키우는 중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여기에서 보낸 첫 학교 생활은 엄마인 나를 조금 더 여기 사람으로, 여기 사회 안에서 살도록 해 주었다. 여기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들의 삶의 방식과 행동의 이유를 그려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뒤늦게 알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연하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