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기 일주일 전, Hort 적응기
9월 입학을 앞두고 8월 마지막 주, 너는 Hort에 갔지.
네 학교에서는 아침 7시부터 오전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오후에는 수업이 끝나 우리가 너를 데리러 올 때까지 너를 돌봐 주는 곳 Hort를 운영한다고 했어. 일하는 엄마 아빠에게는 정말 필요한 도움이지.
나에게 입학 전 너를 꼭 Hort에 보내라고 추천해 주신 분들이 많았지. 학교에 먼저 적응할 수 있고, 긴장을 덜 수 있을 거라고. 학교를 정말 정말 가고 싶었던 너는 학교를 미리 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 흥분했었지.
첫날은 유치원 친구 E와 동행, 오후에 너를 데리러 갔는데 체육관 문 앞에 E와 너의 운동화가 꼭 붙어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낯선 곳이 무서웠을 너희 둘, 유치원에서처럼 서로에게 의지했을 너희 둘
문제는 셋째 날이었지. 너는 기억하고 있니? 그날 일을. 지금 다시 생각해도 나는 그때 놀라고 무섭고 떨렸어. 여기에서 너와 함께 살아가는 일, 여기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경계에 서 있는 일,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한 날이었지.
그 셋째 날은 가족 여행을 간 E 없이 너 혼자 간 날이었어. 너를 데리러 갔을 때, 여자애 둘이 네 이름을 가지고 놀렸다고 나에게 말했지. 너는 그때는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다고 했었는데, 그날 밤 잠들기 전에 한 아이가 너에게 "너희 아빠는 중국에서 왔어. 곤니치와."라고 이야기했다고 네 귀에 속삭였지. 곤니치와는 네가 그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지. 그 아이에게 네가 "나랑 우리 아빠는 여기에서 태어났고, 우리 엄마는 한국에서 왔어."라고 대답했다고도 했어. 그래서 내가 기분이 어땠냐 물었더니 너는 머뭇거리다가 "왜 자꾸 곤니치와라고 해, 기분이 안 좋아"라고 하며 눈물을 쓰윽 닦았어.
나는 외모도, 이름도 다른 너에게 아이들이 보인 반응에 가슴이 쿵쾅거렸지. 새로 온 너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넘기기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았어. 네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놀렸다는 너의 말, 네 출신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건넨 말, 그 말에 나는 여러 가지가 머릿속에 지나다니더라.
여기에서 너와 살며 내가 단단해지는 순간, 이런 상황에서 너의 마음은 어떠한지, 너는 무엇을 느끼는지,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어.
너는 나에게 말했지.
"내 이름 이상하게 부르는 거 싫어. 내가 어디서 왔다고 잘못 말하는 거 싫어."
나는 너에게 말했지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 무슨 말이 중요했지? Nein heißt Nein (아니라면 아니야!)
친구가 아니라고 싫다고 하면 장난을 하고 싶어도 그만해야 됐어.
네가 싫다면 그만하라고 해야 해.
만약 그래도 계속하면 네가 내가 싫어하는 걸 해서 나는 너랑 놀지 않을 거라고 말하자."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너에게 계속 이걸 말했지.
너는 배워야 해.
네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너의 기분을 알리는 법
네가 어떤 행동이 싫을 때 싫어한다고 분명히 밝히는 법
너는 그것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지. 그래서 너와 연습한 말들
내가 불편하면 너는 하지 말아야 해.
나랑 놀려면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 해.
내 이름으로 장난치고 싶어도 그건 하지 말아야 해.
나는 지금 네가 하는 거 싫어해, 싫다고 이야기했어.
네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면 나랑 놀 수 있어.
그리고 너에게 말했지. "너도 다른 아이들에게 그래야 해. 너부터 지키면 다른 아이들도 함께 지킬 거야. 우리는 그걸 배우러 학교에 가는 거야."
너는 이제 혼자 서야 해. 내가 너를 항상 지켜 줄 수는 없어. 그리고 나는 네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어 줘야 해. 나는 네가 이런 일을 자주 겪을까 봐 불안해. 가끔은 화가 날 때도 있을 거야. 외모가 다른 우리, 언어가 다른 우리는 여기에서 아빠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겪을 수도 있어. 하지만 상대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그때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너도 나도 연습하고 연습해야 해.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겁이 나. 하지만 너를 인큐베이터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아. 그래도 네가 네 마음, 네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걸 표현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부당한 상황이면 멈추지 말고 그것을 고치려 노력하면 좋겠어.
나는 혼자 서는 너를 보며 네가 할 수 있다고 믿고, 네 감정과 네 말을 충분히 들여다 봐 주고,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 그것을 너와 함께 할 거야.
옳지 않은 일을 하는 누군가를 볼 때, 그 사람이 너에게 함부로 할 때 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그래서 함부로 네 스스로 너를 낮춰 보지 않았으면 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누군가를 볼 때, 나는 저것은 하지 않으리라는 너만의 경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출 수 있었으면 해.
사람을 그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얼마나 힘이 센 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로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 그대로 받아줄 수 있었으면 해.
우리는 아이를 늦게 얻었다. 나도 늦은 편이었지만 남편은 더 했다. 그가 살았던 독일은 내가 만난 독일과 달랐다. 그는 통일 전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통일 후 독일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그 시절 여기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그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늘 자신이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이방인의 외모로 이방인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그 시절 이야기를 기억나지 않는다며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예전에 그가 지나가던 말로 자기가 사춘기 때 힘들어서 어머니께 왜 나를 이곳에 태어나게 했냐고 원망했었다고 했다. 자기는 이곳에 태어나는 걸 선택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이 나라를 선택해서 온 어머님은 그 말을 듣고 어떤 마음이셨을까. 어머니의 선택도 과연 정말 자유로운 것이었을까를 돌이켜 보면 마음이 선득선득하다.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은 아버지가 되어 아들이 무엇을 겪을지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던 나는 아무리 그에게 두려움을 들어도 그걸 잘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이 상황에 분노를 느꼈다. 화를 내고 이런 건 고쳐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의 두려움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보게 한다. 아이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말이다. 나의 서투른 분노가 아이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게 하는가를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꼭 여기에 살기 때문에 겪는 일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자신과 다른 것을 오해하는 세상에서,
자신과 다른 것을 혐오하는 세상에서 산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불편한 상황일 때
그 상황이 불편하다고 말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을 놔두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아이들 장난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예민함이 본능이 된 남편을 보며
내 서툰 분노보다 그의 말하지 않는 두려움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디에도 없기를 바란다.
여기에도, 거기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