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6주 (15)

식사를 통한 만남

by Baraka

훼잇빌의 첫날 아침식사는 계란프라이와 아보카도, 커피, 빵 한 조각과 블루베리로 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를 초대받았기 때문에 속을 비우고 싶었지만 호스트들은 도통 기회를 안 주는 바람에 배가 고픈날이 없다. 훼잇빌 지역도 태양이 강해서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는 제대로 눈을 뜰 수 없다. 오전 11시 45분쯤에 우리는 군인으로 전역을 한 노부부의 가정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호스트 집 앞에 도착하자 주인장의 손길이 곳곳에 깃든 아름다운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집 앞엔 커다란 벚꽃나무가 심겨 있었고 주위로 한국 채송화가 알록달록 피어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항아리와 각종 과일청을 담아놓은 유리병들이며 한국의 자개로 만든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식탁엔 뷔페처럼 한식이 차려져 있었다.


호스트의 남편분이 한국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녀는 몇 달 만에 한국음식을 차렸다고 한다. 그녀는 한 동안 혀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음식맛을 느끼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서 많이 나아졌으나 완치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케냐에서 온 우리 가족을 위해서 정성껏 한국음식을 만든 그녀의 마음씨에 가슴이 뭉클했다. 우린 그녀가 만들어준 잡채와 비름나물, 숙주무침, 도라지 무침, 열무김치, 두릅무침, LA 갈비와 가지 무침과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면서 잠시나마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희 남편이 베트남 전쟁에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나는 그녀에게 남편분은 트라우마가 없냐고 물었다.

"남편은 몇 번이나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젊었을 때는 남편이 잠결에 몇 번이나 저에 목을 조리고 밤에 불도 안 키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녀는 늙고 당뇨로 고생하는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아끼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도 군인이었다. 그녀 또한 한국과 미국 군부대에서 직원으로 근무했고 부부가 연금을 받고 있었다. 군인인 아들 내외가 출장을 자주 가는 바람에 그녀는 손주들을 돌보아 주고 있었고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할머니처럼 헌신적이나 대가를 바라지는 않으셨다.

오후엔 2년 반 만에 `송머리 미용실'이라는 곳에서 파머를 했다. 예전 한국의 읍내와도 같은 훼잇빌의 한인타운은 애틀랜타와 전혀 분위기가 달랐지만 나는, 이런 곳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파머를 말은 70대 중반쯤 되는 아주머니께서 걸쭉한 수다로 훼잇빌 동네의 한인들을 몇 차례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이곳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한글이 대세 아니던가. 미용실 사장님의 딸 또한 한글학교에 기대감을 안고 갔다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학생들의 부모님은 모두 한국사람들이었고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오직 자신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미용실 사장님은 최근에 유방암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1살 딸아이를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지금껏 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길지 않은 삶이 그리 평탄하진 않았겠구나 싶은 것이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점심을 먹은 것이 다 꺼지기도 전에 우린 저녁으로 스테이크 하우스로 초대를 받았다. 우리 식구는 어린이 용으로 작은 스테이크를 주문했지만 이 또한 사이드 음식이 풍성한 바람에 다 먹질 못하고 오직 고기만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 했다.

한국인들의 만남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이다. 한국에 사시는 분들이나 해외에 사는 한국분들은 사랑의 표현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큰 기쁨인 것 같다. 케냐에서 온 우리 가족을 풍성한 음식으로 대접하시는 분들로 지금도 계속 몸무게가 늘고 있고 16살의 딸아이는 미국 생활 5주 동안에 잘 먹고 잘 자고 사랑을 많이 받아서 부쩍 키가 컸다. 딸아이는 부모님이 어른들을 만나서 3시간 이상 이야기를 해도 불평한마디 없이 묵묵히 듣고 있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가 사랑스러운지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시지 않으시고 어느 분들은 케냐에 갈 때 필요한 거 사가라면서 용돈을 아이 손에 쥐어 주신다.

이른 저녁을 먹은 우리들은 저녁 7시 30분에 미팅이 있어서 식사 자리에서 일찍 일어났다. 미팅 후에는 한 그룹에서 우리 가족과 친구네 부부를 아이스크림 가게로 초대를 해서 교제를 나누었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다 군인 가족이었다. 역시나 훼잇빌은 군인들이 많은 곳이다.


새벽 2시까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경제관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그녀는 7년 전부터 '에브리 달러'라는 앱을 활용해서 재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EveryDollar앱은 데이브 램지가 설립한 램지 솔루션즈에서 2015년에 출시한 예산 관리 앱이라고 한다. 이 앱은 데이브 램지의 재정 원칙에 따라 모든 돈에 목적 만들기라는 철학을 실천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는 7단계의 재정 자립을 개발하였다.

친구는 EveryDollar 앱을 따라서 정기적인 수입과 구체적인 항목별로 지출을 잡고 자꾸만 늘어나는 크레디 빚을 7년 만에 17,000 달러를 다 갚았다고 한다. 모든 자녀들도 이 앱을 사용하면서 재정을 관리하는데 플레이 스토어에서 앱을 다운로드하면 폰에 깔린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으나 나의 구글계정이 미국이 아닌 케냐라서 다운로드가 안되었다. 실제적으로 효과를 본 그녀는 에브리 달러 앱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1달러도 귀하게 여기는 그녀는 한 푼이라도 흐지부지 사용하지 않았다. 에브리 달러를 소개받으면서 미국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재정이 풍성하지 않더라도 돈을 기부하고 노년자금을 준비하고 여행까지 계획한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한마디로 돈이 있어서 기부하고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목적에 맞게 배부하고 지출하다 보니 생활이 힘들어도 여행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에브리달러 앱에 접속이 되면 나도 사용을 해보고 싶다.


우리 가족과 동기 부부는 아침 8시에 교회 성도분의 집에 식사로 초대를 받았다. 전날에 친구는 호스트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부탁했으나 생기가 넘치는 노년의 그녀는, 갓 구운 베이글과 새우죽, 커다랗게 만든 고기 전, 오믈렛과 집에서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과 블루베리 주스 그리고 멋스러운 잔에 커피를 준비했다. 약 2시간가량 교제를 마치고 우리들은 동기네 앞마당에서 포옹을 하며 굿바이를 했다. 딸아이는 픽업트럭 안에서 그네들이 써준 엽서를 읽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엄마, 나는 이분들에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챙겨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너무 송구하고 감사해. 사실은 미래에 대해서 불안했는데 이렇게 사랑을 받으니 마음이 평안해. "

고마운 걸 고마워할 줄 딸아이가 엄마인 나로서는 고마웠다.

우리 가족은 훼잇빌의 시골길을 지나 6시간 만에 아틀란트의 보금자리를 다시 돌아왔다.


훼잇빌로 가는 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