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잇빌 카운티에서 2박 3일
4인용 픽업트럭을 몰고 우리 가족 셋은 아침 6시 45분에 아틀란트를 출발해서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탔다. 남편은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서 미국에 오기 전부터 케냐에서 어렵게 신청을 했었다. 한국시스템에 접속이 잘 안 되는 바람에 며칠에 걸쳐 신청한 면허증은 결국 미국 선배네 집에서 받았다. 미국에서의 첫 운전은 딸아이를 위해서 물건이 저렴하다는 TJ맥스와 마샬이 있는 몰에 가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노스 캐롤라인 북쪽에 있는 훼잇빌 카운티로 2박 3일을 떠나는 여정이었다. 남편은 성격이 침착해서 속도를 정확히 지키고 도로 선밖을 넘어가지 않도록 규칙을 지켜가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중간에 QT라는 주유소에 들러서 주유를 하고 아침 요기를 위해서 빵 안에 패트 한 장만 들어간 햄버거와 소시지를 사서 차 안에서 먹고는 샤롯이라는 카운티를 지나 KFC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케냐에 KFC가 들어온 지 5년쯤 되었기에 미국 KFC는 어떤 맛일까 제법 기대를 안고 음식을 주문했다. 남편과 딸아이가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작은 KFC 가게 안을 이리저리로 둘러보았다. 바닥엔 미끄럼주의라고 노란 푯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테이블마다 음식물 잔해가 떨어져 있었고 의자 또한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바닥이 넘어질 듯 미끌미끌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내려다보니 타일 곳곳에 기름때가 끼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소파가 찢어진 곳에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기도 했다. 미국 KFC에 대한 기대감이 음식을 먹기도 전에 '확'깨져버렸다. 매장 안이 마치 1970년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처럼 느껴지는 것이 기분이 묘했다. 무슨 오지랖인지 불현듯 한국의 진분홍색 긴 고무장갑을 팔뚝까지 끼고 물에 세제를 잔뜩 풀어서 바닥에 쫘악 뿌리곤 튼튼한 솔로 구석구석 기름때를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도대체 음식 매장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더러운 게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 괜스레 심통이 났나 보다. 다행히도 물티슈를 챙겨 왔기에 은근슬쩍 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가 앉을 의자와 테이블 위를 대충 닦고는 목구멍 안으로 감자튀김과 치킨 너겟 몇 조각을 우적우적 밀어 넣으며 무한리필인 음료수를 두 번이나 마셨다.
미국 고속도로는 참말로 단조롭기 그지없다. 일자로만 쭉쭉 뻗어 있고 도로 양쪽으로는 하늘을 치솟을 듯한 소나무 종류가 심겨 있다. 고속도로 주위엔 아무런 볼거리가 없다. 나라가 크다 보니 모든 건물도 거의 다 단층으로 단조롭게 지어져 있었다. 차들이 앞뒤로 달리고 있으나 마치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고속도로엔 수많은 머리가 크고 잘생긴 대형 트럭들이 줄기차게 오가고 개인 차량은 다들 큰 걸 선호하는지 크고 높은 차들이 많았다. 아마도 이곳 사람들이 덩치가 큰 것도 있겠으나 장거리를 오가는 일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후 1시쯤에는 훼잇빌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GPS는 더 이상 고속도로가 아닌 로칼 길로 인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도시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골마을을 좋아한다. 드넓은 농장 사이에 드문드문 지어진 집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땅콩 농장을 지나고 옥수수 밭을 지나고 고구마 밭도 지나고 숲에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는 젖소와 말들이 눈에 띄었다. 어느 농가는 주인이 떠났는지 무너져 가는 폐가도 몇 채씩 보였다.
훼잇빌의 육군 기지는 한국의 특수부대 군인들이 한 번쯤은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을 만큼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은 군인가족들이 많이 살고 미국경제가 불황일 때조차 비즈니스가 좋다고 한다.
애틀랜타와 사뭇 분위기가 다른 시골스러운 훼잇빌에서 우린 18년 만에 동기부부를 만났다. 때마침 갓 이사한 그네들은 우리 부부를 위해서 2층에 단독으로 있는 방과 거실을 내주었고 1층 게스트룸은 딸아이를 위해서 예쁜 스탠드를 마련해 주었다.
첫날 저녁식사는 평생 잊을 수없을 만큼 맛 좋은 다양한 베트남 요리를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다. 케냐에서 먹은 쌀국수는 볶음이나 국물 있는 소고기 쌀국수만 먹었는데 훼잇빌에서 먹은 베트남 음식은 중국음식과 다르게 기름지지 않고 깔끔했다. 식사를 대접한 분은 머리카락 커트를 하는 이발소 사장님이면서 남편은 군인으로 정년퇴임하고 두 아들의 직업 또한 군인이라고 한다. 그녀의 며느리 둘은 베트남 사람이고 거기에다 손자손녀를 둔 젊은 할머니였다. 이국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그녀의 유쾌한 웃음과 풍성한 손대접으로 하루의 피곤이 씻은 듯 사라졌다.
** KFC 매장이나 오래된 애정이 있는 식당을 리모델링하면 미국인들은 싫어한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하였으나 더러운 것은 도통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