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19)

굿바이 미국

by Baraka

내 생애 처음으로 방문한 미국에서 5주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아침에 우리 가족 세명은 옷가지들과 그동안 사용하던 이불과 침대보와 베갯잇을 세탁기와 건조기에 돌렸다. 선배부부는 이른 아침에 일을 나가기 때문에 다행히도 우린 굿바이 인사를 미리 했었다. 남편은 청소기로 집안곳곳을 청소하고 나는, 사용하던 화장실과 방의 가구에 내려앉은 먼지를 물티슈로 구석구석 닦아냈다. 브런치로 붉은색이 아름답게 밴 배추김치를 프라이팬에 넣고 볶다가 통조림 참치를 추가해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계란프라이를 해서 볶음밥 위에 하나씩 올렸다. 미국에서 김치볶음밥으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전날 밤늦은 시간에 선배 아내인 S는 하루 종일 고된 노동으로 몸이 지칠 만도 한데도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 집에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소파에서 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살짝 다가갔다. 그리고 그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들이 5주 동안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거처와 많은 것을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너무 잘해주셔서 남편과 제가 다시는 이곳에 못 올 것 같아요. (웃음) 친가족들에게도 이렇게 잘해주질 못하셨을 텐데... 너무 감사드려요."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말끝을 잇질 못하다가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는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우리가 가장 힘들었을 때 그대가 베풀어주었던 관심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그 은혜를 보답한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가 은혜를 베풀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그것을 기억조차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녀는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에게 고마웠을지라도 선배부부가 베푼 은혜는 정말이지 말할 수없이 크다.


우리는 정오 12시에 한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미국 여정 5주의 시간을 되새겨 본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셨던 분들과 훼잇빌을 방문했을 때 나 머리를 파머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미용사, 국제결혼을 해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퇴역군인들의 아내들, 머틀비치에서의 3박 4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별장 같은 집에서 아르헨티나식 아사도를 먹으며 교인들하고 교제하던 날. 이 모든 추억의 한가운데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어떤 아름다운 경치보다 나의 관심은 늘 사람에게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안식월 6주는 사람에게 위로받고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케냐로 돌아가는 스케줄은 우린 애틀랜타 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나이로비로 입국하는 경로다. 그러나 루프트한자 항공사에선 여권에 찍힌 케냐 비자가 의심스럽다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해왔다. 남편이 침착하게 케냐 이민국에서는 비자 날짜를 수기로 기록한다면서 설명을 해도 직원들은 쉽사리 티켓을 발행하지 않았다.

애가 탔지만 시간이 약 1시간이나 지체되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항공사 직원들 중에 백인은 한 명도 없고 동양인 2명 그 외 사람들은 대다수가 흑인이라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백인 미국인들은 항공사에서 일하는 것엔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월급이 적은 것일까.

우연곡절 끝에 우리는 입국장소로 향했고 드디어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10시간 후에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나이로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커피 한잔 그리고 세일하는 원 플러스 원으로 판매하고 있는 하리보와 초콜릿을 구입하고는 조모케냐타 공항까지 8시간 30분이 걸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케냐 시간으로 밤 9시 30분이 넘어서 공항에 도착하니 정신이 번쩍 나도록 공기가 시원했다. 더딘 입국심사를 마치자 짐을 찾는 곳에선 유럽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이들은 다 어디로 흩어질까. 무엇하러 이곳에 왔을까.

우리는 짐을 카트기에 싣고 엉키고 설킨 줄을 지키면서 마지막 짐검사를 위해 차례를 기다렸다. 공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박스로 포장한 짐을 가리키며 세금을 내지 않도록 도와주겠다면서 돈을 요구했다. 우리는 그에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입국 마지막 관문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예언처럼 박스로 포장한 짐 2개가 딱 걸리고 말았다. 세관직원이 우리 박스를 뜯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남편에 반대를 무릅쓰고 구입한 스리라차 소스가 한꺼번에 몰려있었다. 세관담당자는 트집을 잡기 시작하더니 세금 120달러를 내라는 것이다. 그와 20분 넘게 실랑이를 하다가 50불로 협상을 하고 나자 남편이 현찰이 아닌 엠파사라는 공식계좌로 케냐정부에 입금해 준다고 했다. 영수증을 준비하는 세관 직원의 표정이 완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워낙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이다 보니 공식 계좌로 입금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영수증 발급을 기다리는 와중에 한 중년 남자가 부리나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현금을 직원에게 건넸다. 그는 영수증을 발급도 안 하고 보관 중이던 양주를 중년 남자에게 건넸다. 그 현금은 그의 포켓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과 함께 기운이 쭉 빠졌지만 바깥공기에 뒤섞인 매연 냄새를 맡으니 웃음이 나와 버렸다. 여긴 어디? 케냐다.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