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한글학교 교사
새로운 나라에서 적응하느라 아이 셋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세 아이들이 빨리 자라기를 바라던 어느 날, 한글학교 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 아이들을 한글학교에 보내고 엄마는 교사로 봉사를 하라는 친절한 권유를 해 왔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기에 거절을 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설득으로 결국 유치부 보조교사로 봉사를 시작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마냥 예뻤다. 사랑스러움이라는 이유로 담임교사를 맡으면서 한글학교 교사로 11년째 봉사하고 있다.
재 케냐 한글학교의 역사는 약 40년쯤 된다. 웬만한 엄마들이 모두 거쳐 갈 정도로 교사는 수시로 바뀌었다. 사실 전. 후반기 합해 30주간을 토요일마다 봉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몸이 피곤하고 아파도 세 아이들과 함께 한글학교에 갔다. 마치, 나에게 부여된 사명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예뻤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7시 40분쯤 집에서 나가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2시쯤 된다. 피곤한 날은 점심을 먹지도 않고 쓰러져 잠부터 잤지만 또다시 토요일이면 한글학교에 갔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두 학기를 보내고 한 해가 지나더니 어느새 11년를 맞이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주말에는 교회에선 주일학교 사역자로, 주중에는 대학생 선교단체에서는 간사로 일했다. 교회에서는 학생부와 주일학교 그리고 유치부를 지도했는데 그때도 아이들이 예뻤다. 코를 흘리고 머리카락이 엉클어지고 얼굴이 꼬질꼬질해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케냐의 어린아이들이 아니 예쁠까? 검은 피부에 큰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적과 상관없이 아이들을 보면 눈이 자연스럽게 간다.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님, 아이들이 그렇게 예쁘세요?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네요."
남과 여의 사랑은 식을 수 있겠으나, 어쩜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한글학교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물론 부모님의 권유가 가장 크겠으나 어느 아이는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오기도 하고 어느 아이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 언어의 혼란 때문에 오기도 하고 어느 아이는 다양한 한국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서 오기도 한다.
케냐는 부족어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유치원부터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원칙이다. 키스왈리는 수업시간에 만 배운다. 한국 아이들 또한 학교에서 영어로 공부를 한다. 아이들은 토요일 한글학교에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 책으로 공부를 하며 특별활동 시간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한다.
어느 해는 개학식과 설날 행사를 함께 했다. 아이들은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고 한인회장님과 한글학교 이사장님과 담임 선생님에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그리곤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당에 알록달록 고운 한복을 입은 아이들과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했다. 여자 아이들은 두 손으로 치마를 살짝 위로 걷어 올리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깔깔, 호호거리는 웃음소리가 보라꽃 자카란다 나무 아래에서 퍼져 나갔다.
사랑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했듯이 해가 깊어질수록 그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