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친구

J를 추앙하고 응원한다

by Baraka

딸아이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가끔씩 학교 생활과 친구 이야기를 나에게 꺼낸다.

“엄마, 엄마는 단짝 친구가 있어?"

"단짝?"

"아, 알 것 같아... 엄마의 단짝."

성인이 되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어떤 이들은 상처를 받기도 싫고 주기도 싫다며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만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느껴 보지 못했던 사람 사이의 경계선이라는 것을 케냐에서 알게 되었다.


2007년 한인 사이에도 이런 묘한 분위가 있었다.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쇼핑 몰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마트에서 최대한 빠르게 물건을 구입하고 밖으로 나왔고 남편은 계산대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나의 가슴에는 6개월 된 딸아이가 매달려있었고 한 손으로는 활동량이 많은 3살 된 아들을 붙잡고 있었다.

입구에서 한 가족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한국인 같다는 생각하에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본체만체 내 앞을 휙 하고 지나쳤다. 케냐에 온 지 3개월밖에 안된 나는 한인회의 분위기가 파악이 안 된 터라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몰 2층에는 돈을 내고 사용하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조금 전에 스쳤던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나는 어찌나 반가운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우리 소개를 했다. 돌아온 답은 “아~예”가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케냐 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타국에서 낯선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케냐 살이 7년쯤 되던 해에 한글학교에 세명의 아이들을 보내면서 교사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J가 교사로 합류를 했다. J는 외모가 곱고 성격이 차분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참으로 현숙했다. 나는 그녀와 다르게 두 눈은 부리부리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해서 간혹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둘째 아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나를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따, 맘마'같다고 한다.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누군가가 옆에서 졸기라도 하면 금방 깰 판이다.

J를 만나면 만날 수록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사회 이슈나 사람에 대한 관점이나 생각하는 가치관이 통해서이다. 타국에서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복중에 큰 복이다.

우리의 또 다른 공통점은 외롭고 힘든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간다. 특별히 상대가 그녀도 알고 나도 아는 사람이라며 더욱 그렇다. 우리는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김 씨를 위해 작전을 짜기도 했다. 몇 번 만났을 뿐인 케냐 인터내셔널 학교 교장을 찾아갔다. J는 이동차를 준비하고 나는 김밥을 말고 교장의 남편이 좋아한다는 배추김치를 준비했다. 그날 왕복 3시간쯤 걸려 다녀온 학교에서는 끝내 연락은 없었다. 우린 불의를 보면 함께 화를 내기도 하고 독설을 내뱉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만나면 반갑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 날 새벽에 J에게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밤새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자신의 아픈 마음을 보내왔다. 나에게 그녀의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잘 추슬러 갔다. 어느 때는 쿨하고 어느 때는 따스하고 어느 때는 똑순이 같기도 하고 순박한 그녀는 매력덩어리가 틀림이 없다. 또한 어찌나 탤런트가 많은지 못하는 게 없다. 노래와 춤, 장구, 피아노, 티칭 그리고 영어 통역도 수준급이다. 거기에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생활이 빠듯한 게 한눈에 보이는데도 나를 만나면 커피와 밥값을 내려고 한다. 나는 J의 삶을 추앙하고 응원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