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케냐 한글학교에서 교사로 10년째 봉사하고 있다. 나의 세명의 자녀들도 케냐 한글학교를 졸업했다. 한글학교는 1년에 전후반기로 각각 15주 동안 토요일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해서 12시 20분쯤에 끝난다. 3타임은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국어책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1타임은 특별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와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P를 처음 만난 곳은 2018년 2학기를 개학한 한글학교에서다. 그때 P는 14살의 소년이었다. 그는 1년 6개월 동안 토요일이면 한글학교의 보조교사로 봉사를 하러 왔다. 그동안 한글학교에서 P와 함께 했던 소감에 대해 나누고 싶다.
첫째, P는 가르침의 은사가 있다.
케냐 한글학교엔 점점 부모님 중 한 분이 한국인이 아닌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일반반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어려워해서 따로 KLL 반에서 공부를 한다. 어느 날 KLL 담당교사의 부재로 P가 학생들과 몇 번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P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좋아했다. P는 영어와 한국어를 접목시켜서 효과적이고 쉽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평소 각종 운동을 좋아했는데 특별활동 시간에 축구수업을 맡겨보았다. 역시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둘째, P는 적극적인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유아. 유치부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다. 인원이 많을 때는 15명쯤이나 되었다. 한글학교 자체 건물이 없다 보니 WNS라는 국제학교를 빌려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한글학교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와 공부하는 교실이 떨어져 있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토요일이면 물건을 새롭게 세팅을 해야 만 했기 때문이다. P는 교실의 테이블과 의자를 재배치하고 사무실에 있는 학용품과 카펫을 옮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교실과 복사실과 사무실이 따로 있다 보니 보조교사였던 P는 쉴 틈 없이 봉사를 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필요한 자료를 복사하고 휴식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챙겨 주고 놀이터에서 유아. 유치부 아이들을 돌보았다. 어린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쳐도 받아 주고 지혜롭게 대처할 줄 알았다. 아이들의 짓궂은 말에도 상처를 받지 않는 P를 보면서 내면이 강직한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가 한글학교에서 봉사하는 동안엔 그의 얼굴에서 짜증스러운 표정이나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셋째, P는 변함없이 성실하다.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한글학교는 잠시 온라인으로 수업을 전환하다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한글학교와 P의 집이 멀어졌지만 변함없는 성실한 모습으로 봉사를 했다.
P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 언제든 저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주세요.”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재케냐 한글학교에서 P라는 학생을 1년 6개월 동안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다. 무엇보다도 P의 미래가 기대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휴학을 했다. 1년 동안에 케냐와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는 지난해 8월부터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P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갈 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될 것이기에 그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