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은 잘 계실까

잘못된 애착관계

by Baraka

몇 해 전에 봉사활동으로 온 의사인 H를 처음 보았을 때 성격이 참으로 무던해 보였다.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 답지 않게 무척이나 얼굴이 앳되게 보였고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여고생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녀는 D라는 여자청년하고 나름 큰 방을 함께 사용했었는데 입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D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허리협착증까지 앓고 있다는 그녀를 위해서 MDF를 잘라서 침대 사이즈에 맞게 깔아 주었다. 며칠이 지나서 그 방을 열어 보니 침대와 침대 사이에 가로로 놓여있던 커다란 책상이 길게 세로로 옮겨져 있었다. 될 수 있는 데로 D와의 시선이 부딪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H를 위해서 방을 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자 그것은 원하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 일대일로 H를 만나면서 조금씩 그녀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이었던 그녀는 부모님의 기대답게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늘 Top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고향에서 유명한 J대학 의과대를 지원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그녀가 서울의 S대학을 입학하길 원했다. 본인의 결정이 아닌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그녀는 S대 의과대에 갈 점수가 안되어서 건축학과에 입학을 다. 그렇게 신입생이 된 그녀는 입학한 지 한 달이 못되어서 자퇴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매일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서 무기력하게 누워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H는 9월에 J대학 의과대에 입학을 한다.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한 학기 먼저 J대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의과대에서도 방황을 한다. 졸업 후에는 다행히도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지만 우울증이 재발되는 바람에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상담을 받고 약까지 먹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결국 지도 교수님은 H에게 휴가를 주었고 이후로도 그녀는 한 병원에서 6개월 이상을 버텨내지 못하며 개인병원을 돌고 있었다.


그해 H는 병원생활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사직을 하고 그녀의 지인 소개로 3개월 계획으로 케냐를 방문한 것이.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H는 생각지도 못한 동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H보다 8살이나 어린 D가 함께 출국한다는 것을 황당하게 당일날 알게 되었다. 봉사활동은 오롯이 혼자 오는 줄 만 알았는데 예상치 않게 한 사람이 합류하게 되면서 그녀의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지인은 나름 심리적으로 불안한 H를 위해서 D를 동행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H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믿고 따랐던 지인에 대한 신뢰가 케냐에 도착하기도 전에 깨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D가 그녀의 눈에는 가시였고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첫 미팅을 하던 날, H는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 자체에 배어있는 슬픔과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2 시간 동안 H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의 모든 에너지를 그녀가 빼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바싹 마른 스펀지가 모든 습기를 싹 빨아들이는 것처럼 나의 모든 기가 소모되었다고나 할까.

H는 약속한 3개월의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사이에 H를 살피니 그녀는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오직 병원 안에서 만 존재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그녀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엄마였다. 본인의 뜻이 어그러졌을 때 속상함을 어린아이처럼 눈물로 호소하던 H. 나는 그녀가 소리를 내며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두 눈 또한 슬픔이 짙게 배어 있었으며 목소리는 늘 중저음이었다. 어떤 일을 하기라도 하면 함께가 아닌 혼자 일하는 것을 원했다. 반면 H는 어떤 일이든 맡겨지면 성실하게 일을 잘해 냈다. 단지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일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마음이 불편한 사건이나 사람을 만나면 한 곳에서 오래 견딜 수가 없었다.

30십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의 모든 사사로운 일을 엄마에게 보고하고 지도를 받았던 의사 선생님 H. 몇 번의 개인 만남을 통해 알게 되면서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녀 주위에는 오래된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병원이든 교회이든 어느 한 곳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고 떠나오다 보니 고립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직 그녀가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엄마와 결혼한 친언니 가족뿐이었다. 그렇게도 똑똑한 지능을 갖고 있었던 H는 정신적으로는 십 대에 머물러 있었다.


H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우울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과 약처방도 안 든다는 그녀의 전두엽. H가 힘들어할 때면 언제든 찾아와서 도움을 주고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엄마. 그녀의 엄마가 보여준 지극한 돌봄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지만 삼십 대 중반의 H에게는 너무 과한 관심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커다란 탱크에 물이 넘쳐흐를 때면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곤 한다. 그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나이 40이 넘었을 H 의사 선생님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