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소중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가 케냐에 처음 온 해는 2007년 6월이었다. 만 15년을 지내면서 우리는 두 번의 안식년을 다녀왔다. 미션 한 텀은 4년이다. 5년째 되는 해에 안식년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가 안식년으로 케냐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나이로비 대학 졸업생 한 명이 찾아왔다. 그는 심성이 착하고 신실한 형제였다. 대학생부터 선교회에서 양육과 훈련을 받았던 그의 이름은 사이먼이다. 선임이었던 선배가 안식년으로 케냐를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않자 사이먼은 상심이 컸나 보다. 우리마저 그렇게 될까 싶었는지 그는 어렵게 말문을 뗐다.
본인의 아버지가 나이로비 인근에 땅을 갖고 있으니 무료로 집을 짓고 살라는 제안을 했다. 그는 대학생 대상으로 선교를 하는 우리의 형편이 녹록지 않은 것을 익히 보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이먼의 겸손한 제안으로 우리는 그의 아버지가 산다는 동네를 찾아갔다. 망고 나무 아래에서 우리가 준비해 간 양고기를 구워 먹으며 그들의 소박한 삶과 착한 심성을 읽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땅이라는 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집 뒤로 피탈 길 땅이 펼쳐져 있었다. 마른땅 이곳저곳에는 돌들이 박혀있었고 처음 본 커피나무와 옥수수가 심겨 있었다. 그 아래로 사이먼의 아버지가 돌을 캐낸다는 샴바가 있었다. 이 넓은 땅은 사이먼 아버지의 땅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즉 사이먼의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이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이다 보니 정돈되지 않은 곳에 집을 지어 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이먼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만 간직한 채 케냐를 떠나왔다.
4년 동안 케냐에 적응하고 사역을 하느라 남편은 많이 지쳐 보였다. 얼굴은 강한 햇빛과 건조한 날씨에 푸석푸석하고 검게 그을러있었다. 유전적인 요소가 있겠으나 머리카락은 흰색이 가득했다. 케냐에 있을 때 늘 머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는데 고혈압까지 생겨서 약을 먹게 되었다.
우리는 친정 동네에서 세를 얻어 지내기로 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집에는 이미 살림살이가 들어가 있었다. 막내 새언니가 이사를 가면서 모든 주방제품을 채워 놓았고 둘째 오빠는 때마침 이사 가는 집에서 소파와 침대와 식탁,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옷장까지 갖다 놓았다. 친정엄마는 된장과 고추장, 간장과 여러 종류의 장아찌와 김치를 챙겨 주셨다.
우리는 가까운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영어 클래스에 등록을 해서 오전에 만 공부를 했고 아이들은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렇게 전반기가 후딱 지나고 후반기를 지나면서 다시 케냐로 출국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케냐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고민이 생겼다. 그리곤 결정을 했다. 사이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남편과 사이먼은 이메일을 통해 설계 도면을 주고받으며 집 지을 계획 세웠다. 물론, 집을 짓게 된 재정적인 부분은 친정부모님의 도움이 컸다.
우리의 집과 센터는 나이로비 외곽지역에 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기만 하면 눈으로 보기에도 시골지역이다. 먼저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짓고 그 앞으로 교육센터와 기숙사를 지었다. 사이먼 아버지는 우리에게 땅 600평을 15년 동안 무료로 빌려 주었다. 벌써 8년을 살았지만 계약 기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 이후로 월세를 내며 살지는 모르겠으나, 사이먼은 계속 이곳에 살아도 괜찮다 한다.
끼꾸유라는 부족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은 웬만해서 는 안 판다.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마치, 조상의 영혼이 땅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건물을 지을 때 한국분들이 반대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충고와 우려와 걱정을 보내왔다.
`내가 아는 사람은 집을 잘 지어 놓고 쫓겨났다. 아마도 현지인들에게 당할 수 있으니 괜한 짓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이먼의 약속을 믿어 보기로 했고 지금껏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다. 우리는 소박한 마음을 담아 1년에 한 번 사이먼 아버지에게 감사 표현을 케냐 실링으로 드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은 집을 구경하러 왔다. 그중에 한국인들은 땅을 사라고 권유했지만 우리나 주인이나 그런 맘은 없다. 이제는 우리처럼 땅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문의를 해 오고 있다.
어느 나라이건 그 나라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사이먼이라는 귀한 형제와 그의 부모님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가난한 선교사를 불쌍히 여기고 거두어준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대학생들을 섬기고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주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3박 4일 동안 부활절 수련회가 있었다. 케냐에서는 부활절 기간에는 연휴이다.
15년 전에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이제 삼십 대 중후반이 되었다. 이들은 케냐 선교회 이사로 섬기며 물질로 함께 동참할 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예배에는 자신들의 아이들까지 데리고 왔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수련회는 축제였다.
이렇게 우리는 케냐 키암부 작은 마을에서 현지인들 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한 자이다.
수련회 후 염소숯불고기와 우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