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키에 고운 피부를 가진 Kim은 보기 드문 미인이다. 그녀는 나이로비에서 20년쯤 살아서 그런지 나를 반기는 미소까지 여유로웠다. 그녀와 나를 태운 차는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경비행장을 지나쳐 달려 나갔다.
우리는 나이로비에서 제일 큰 빈민가인 키베라를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 가는 곳이다 보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긴장이 되어 속이 울렁거렸다. 한 참을 달려 도착한 센터의 철문이 활짝 열리자 작은 정원 앞에 마리아상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겼다. 오늘 나와 Kim은 키베라에 있는 장애인 센터로 봉사를 하러 왔다. 그동안 키베라를 몇 번이나 방문하고 싶었지만 외국인이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하다고 해서 자제를 해오곤 했다. 사실 Kim으로부터 이곳 소식을 듣고부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애인 봉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나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오빠 또한 불편한 다리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큰 오빠와 막내인 나는 나이가 9살이나 차이가 난다. 오빠는 갓 돌을 넘기고 몸에 열이 올랐다. 온몸이 축 늘어져 며칠을 열과 씨름하다가 마침내 이겨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곧바로 주저앉았고 다시 일어섰지만 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아들을 업고 보건소를 찾아갔지만 끝내 한쪽 다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빠는 60년째 성실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나와 Kim이 센터 마당에 발을 내딛자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이태리에서 온 수녀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밥을 혼자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나무 문으로 들어서자 망고 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그 아래에 꽤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고 몇몇은 침대에 누워서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장애인들의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아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나와 달리 Kim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손을 잡아 주었다.
센터의 직원들과 장애인이 대화를 나누며 ‘하하 호호’ 웃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나니야 연대기'의 비밀 옷장을 통해 들어온 색다른 세상 같았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조금 전에 들어온 문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정원 안에는 문 밖의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평화와 고요가 흘렀다. 내 영혼이 육체를 이탈해서 그들 속에 서있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동양인 여자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은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기쁨 속에 있었다. 작은 정원 안에는 이미 천국이 현존하고 있었다.
나에게 맡겨진 사람은 3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자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의 두 손은 오그라들어 있었고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입은 옆으로 반쯤 돌아가 있어서 밥 시중을 들리기에는 혼 줄이 날 것 같았다. 점심 메뉴는 부드럽게 익힌 콩에 감자와 당근과 피망이 들어간 ‘기데리’라는 케냐 음식이었다.
숟가락을 잡은 내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나름 조심스럽게 삐뚤어진 입속으로 음식을 넣어 주었다. 그러나 입술사이로 음식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나는 어쩔 줄 모르며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오물오물 음식을 씹어 목으로 넘기는 그녀는 먹는 자체도 힘겨워 보였지만 그에 비해 얼굴은 평온했다. 그녀의 입에 다시 음식을 넣어 주고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스스로 밥을 먹는 사람은 몇 안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우미들에게 음식을 받아먹었다. 침대에 누워서 밥을 먹는 남자 둘은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보기는 커녕 앉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다 공평했고 그 누구도 이상한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음식을 다시 그녀의 입에 넣으려는 순간 작은 목소리로 들려왔다.
“볼레, 볼레”
나는 숨을 깊게 고르며 중얼거렸다.
“그래, 천천히,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