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는 그 멋스러운 말은 사실 끝이 보이지는 않은 상황과 생활에서는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올 때는 배로 기기 시작한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찬송가를 1장부터 한 장 한 장 넘겨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때론 동물 사진이 들어간 엽서를 잔뜩 사서 한국의 지인에게 빼곡히 글을 써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극적인 생활 만 한 것은 아니다. 입덧이 끝나 갈 때쯤 싱싱한 생선을 집에서 받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몸바사 바닷가에서 생선 사업을 하는 사장님께 직접 배달 문의를 드렸었다. 집에서 물건을 받으려면 70kg 이상을 주문해야 한다기에 주위에 사는 한인 분들에게 연락을 해서 생선 주문과 배달 역할을 하게 된다. 해안 도시에서 생선이 오는 날은 우리 집 마당에는 한인들이 갖다 놓은 떡과 콩나물, 두부, 참기름, 족발이며 알타리가 놓인다. 그 일을 3년쯤 기쁨으로 한 것 같다.
어느 해는 한국의 지인의 자녀들을 위해 영어캠프와 문화체험이라는 주제로 한 달간 프로그램을 계획해서 운영을 하기도 하고 10개월 간 단기 봉사로 케냐에 은 청년들을 10년 동안 한집에서 생활하며 케어를 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해외봉사를 하러 오면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도 내가 도맡아서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나는 마음 한쪽이 늘 허전했다.
누군가는 비난하듯 그 마음은 자신을 내려놓지 못함에서 오는 욕심이라고 말했지만 수용하기 힘들었다.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간은 쉼이 아니었다.
희뿌연 안개가 짙게 깔린 숲 속에서 길 잃은 사람이 살려달라고, 거기 누구 없냐며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고 싶었다.
그 끝 마지막에서 글쓰기를 만났다. 글쓰기는 나에게 치유와 회복이라는 선물이 되었다. 길고 긴 코로나 펜데믹에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졌다.
케냐에서의 15년의 삶뿐 아니라 나의 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글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서 나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답을 주기도 했다. 이 시간을 통해 나의 마음은 단단해졌다.
어느 예능프로에서 누군가가 국민 MC 유재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재석 씨는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일을 줄이고 싶거나 쉬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무명일 때 일이 없어서 많은날을 쉬었습니다. 더 이상은 쉬고 싶지 않습니다.”
나 또한 케냐에서 충분한 쉼을 가졌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의 그늘로 숨거나 머뭇거리고 싶지 않다. 나의 영어 실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사실, 강의를 준비하는 하는 동안 몇 번이라도 못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틀어 쥐었다. 이번에 포기하면 다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의 파파고의 도우미로 어설픈 강의였지만 나와의 싸움에서 해낸 것이다.
‘I did it.'
가수 임재범 씨가 진심을 담아 불렀던 비상의 노래가 생각이 난다. 그가 움츠렸던 날개를 세상을 향해 넓게 펴고 힘껏 날아오르고 싶다며 간절함을 담아 노래한 것처럼 나 또한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