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매년 4월만 되면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록키산맥의 여행을 생각하게 된다.불편한 사람을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2003년 4월 중순 캐나다로 향하는 대한 공항에 몸을 실었다. 내 캐리어 안에는 정선생님의 그림엽서가 실려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꼭 김 선생님을 만나 엽서를 전달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이 여행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미션을 나는 꼭 수행해야 만 했다. 정 선생님은 나에게 그녀가 직접 그린 엽서와 김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손에 쥐어 주었다.
매년 4월 중순에는 M단체 스태프들은 국내에서 '전국 연합 콘퍼런스'를 갖는다. 그러나 올해는 특별한일이 있는지 그중 리십 팀들만 캐나다를 방문하는 계획을 잡았다.
M단체 지역 책임자와 주요 임원들 20여 명쯤 되는 사람들은 9박 10일간의 콘퍼런스를 위해 밴쿠버로 향했다. 치열한 3월을 보낸 젊은 스태프들은 비행기를 타자마자 긴장감이 풀린 듯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그동안 못 잤던 잠을 몰아 자기 바빴다.
1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공기가 시원한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케리어를 끌고 나온 우리 앞에는 50인승 리무진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피곤에 지친 일행을 호텔로 데려다 놓을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록키산으로 곧바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창가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로 실내는 적당하리 만큼 따뜻했다. 다행히도 차 안의 넉넉한 공간으로 우리는 의자에 띄엄띄엄 앉았다.안락한 의자는 또다시 졸음을 불러왔고 금방 잠들게 하는 묘술까지부렸다.
창 너머로 보이는 경치는 아름다웠고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40십대 중반의 남자분께서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고 운전사 옆에 섰다. 그는 우리에게 환영 인사를 건네며 앞으로 3박 4일을 록키산맥으로 인솔하게 될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것을 보니 그는 오래전부터 밴쿠버 생활을 한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눈빛은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했고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보였다. 이 고된 일정은 재정을 아끼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었다. 나 또한 이내 창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눕히자 졸음은 곧 깊은 잠이 되었다.
가이드가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캐나다의 문화와 경제 그리고 록키산맥에 대해서 아주 설명을 잘해 나갔다. 로키 산의 브러시를 나누어 주기까지 하는 걸 보니 꽤나 이 여행에 신경 쓴 것 같았다. 다음 도착지에서는 록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호수가 된 곳이며 곧 도착할 것이라며 친절하게 말을 덧 붙였다.
캐나다 록키산맥은 아름다웠다. 산줄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멋스러웠고 가는 곳마다 도로는 잘 닦여 있었다. 그러나 이번 콘퍼런스에 참석 한 20명 중 15명 이상이 강원도 출신들이라서 그런지 장엄한 산과 우거진 나무 숲에도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피곤한 육체가 이 모든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분 후 호수 앞 주차장에 내렸다. 이미 많은 여행객들은 에메랄드 물빛 호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는 스태프들의 모습에서 전혀 흥미로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숲 속 요정의 집' 같은 곳에서 엽서 몇 장을 산 기억만 난다. 무리가 다시 버스에 올라타자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안타까운 듯 말을 한다.
"제가 15년 동안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번 팀만큼 록키산맥 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처음입니다. “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이도 젊으신 분들인데 참 이상하네요..."
지금껏 그가 만난 여행객들은 록키산맥을 설명하기라도 하면 눈을 반짝거리며 반응했을 것이다. 이번 팀은 버스 안에서는 잠만 늘어지게 자고 잠시라도 구경하는 시간에 조차 무기력한 모습이니 그에게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의 눈빛에서 ‘이럴 거면 왜 비싼 비행기를 타고 와서 록키산맥 여행 스케줄을 잡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 만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하늘 바로 아래 천국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땅에서 즐거움을 빼앗아 갔단 말인가.
눈과 우거진 나무와 끝없이 이어지는 산 그리고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기다리고 있던 작은 숍들이 전부였다. 그렇게 장엄한 록키산맥여행은 3박 4일 만에 지루하게 막을 내렸다. 버스는 록키산맥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에 우리를 콘퍼런스 장소에 내려 주고 도망치는 달아나 버렸다.
몇 년 전부터 밴쿠버에는 나이 사십을 넘긴 싱글 스태프가 캐나다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번 캐나다에서의 모든 여행 일정과 콘퍼런스를 위해 그녀의 수고가 엿보였다. 남은 3박 4일 동안 우리는 강의를 듣고 토의를 했다. 저녁마다 M단체 대표가 주제 강의를 한 후에도 계속 회의가 진행되었다
아직도 그날 밤 회의 시간이 생생하다. 회의 이틀째되는 밤이었다. 몸은 피곤한 데가 시간은 밤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M단체에서 캐나다에 온 목적이 드디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리더십 팀들은 지역 스테프들을 설득시켜 새롭게 건축할 건물 재정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스테프가 ‘건축 브리핑'을 마치고 의견을 한 명, 두 명 듣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남자 동료들이 참고 있던 화를 쏟아 내듯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나의 동료들이 지쳐 보였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말이다. 결국 그 불만이 불화산처럼 터져 버린 것이다. 몇 시간째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도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훈계와 설득을 오가며 맘을 달랬다. 13명의 스태프들은 모두 결혼한 사람들이었고 자녀들이 한두 명씩은 되었다. 그중 나만 유일한 여자 스테프였고 아직 신혼이었기에 아기는 없었다. 나는 그동안 가장인 동료들의 무거운 삶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동료 아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껏 앞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때로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아니 자랑스럽기까지 생각하는 아직 결혼생활에는 애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