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왜 케냐를 그리워했을까

by Baraka

마당에 심어 놓은 로즈메리 허브가 아름드리 자란다. 무엇이든 마당에 심어 놓은 식물은 개들이 짓궂게 망쳐놓아 자주 죽곤 했다. 다행히도 두 그루의 로즈메리는 개들의 장난질에도 뿌리를 잘 내렸다. 나는 아침이면 손바닥 가득 로즈메리 잎을 훌트며 향긋한 냄새를 맡는다. 누군가에게 김치나 반찬을 챙겨다 줄 때면 가방 안에 로즈메리 가지를 '뚝뚝'꺾어 한 움큼 넣어 가지고 간다. 로즈메리의 향기는 한국 음식의 젓갈 냄새를 없애 줄 만큼 강하다. 로즈메리의 강렬한 향기처럼 나는 지독하게 향수병을 앓은 적이 있다.

몇 해 전 우리 가족은 안식년을 제주도에서 보낸 적이 있다. 많은 분들이 물어왔다 친정이 제주도이냐고. 물론 아니다. 친척 한 명도 없는 곳이지만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서 남편은 미국이 아닌 제주도를 선택했다. 나는 육지가 좋았지만 남편은 그동안 Mission으로 지쳐있었기에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제주에서 10개월 보내며 남편은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컴퓨터 통계학을 공부했다. 제주에는 일가친척은 없었지만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모교회 선배가 살고 있었다. 선배의 처가 댁이 제주도였던 것이다. 제주에서 18년쯤 살아온 그는 말할 때면 제주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거친 제주의 바람에도 익숙해 보였다. 사실, 미리 선배에게 초등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을 알아봐 달라고 했었다. 우리 가족은 선배의 수고로 검은 모래 해안가 부근에 있는 방 3개짜리의 연립주택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살게 되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아스팔트 위로 '후두득'거리며 비가 내리자 둘째 아이가 창문을 열었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을 보며 딸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엄마, 케냐 냄새가 안 나."

"케냐 냄새?"

"응, 케냐 냄새 있잖아? 흙냄새... 케냐 빨리 가고 싶다."

케냐는 비가 내리면 사방팔방에서 흙냄새가 올라온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붉은 흙을 볼 수 있다. 시내 쪽에는 웬만한 곳은 다 아스팔트가 깔려있지만 현지인들이 사는 골목은 흙길이라서 장마철에는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나의 집도 도로가에서 5분쯤 흙길을 따라 들어와야 한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차바퀴나 사람들의 신발에 덕지덕지 흙이 묻는다. 그러나 땅은 태초부터 간직하고 있던 흙의 냄새를 비가 올 때면 더욱 강하게 뿜어 낸다.

딸아이는 흙냄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생김새는 완전 공대생이었던 남편을 빼닮았는데 감성은 나를 닮은 딸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제주였지만 나는 섬 생활의 특이 함으로 답답증을 느꼈다. 집 앞으로 푸른 바다가 보이고 산책할 작은 오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케냐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뿌리를 내리고 살 곳이 아니었기에 더 그러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케냐가 그리웠다.

제주의 여름은 4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무더운 여름을 에어컨이 없이 지낼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철새처럼 잠시 살다가는 곳이라 처음부터 기본적인 것 만 갖추고 살기로 했었다. 주방 살림은 선배가 미리 준비를 해두었기에 작은 냉장고와 TV만 구입했다. 때마침 집 가까이에 있는 건물에 이케아가 오픈을 해서 작은 수납장이나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지만 에어컨 설치는 큰 과제였다. 몇 개월 시원하게 살겠다고 에어컨을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다행히도 선교회 여름 콘퍼런스가 육지와 제주에서 있었기에 여러 행사들을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의 여름은 너무나 더웠다. 오후 5시가 되면 아이들을 검은 모래해안에 데리고 나와서 물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해가 지는 노을을 등지고 발가락과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가족들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자 금세 겨울이 왔다.

우리는 12월 중순에 제주의 생활을 정리하고 12월 31일 출국을 해서 1월 1일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을 했다. 온 가족 케냐에 함께 온 후 남편은 2달 뒤에 홀로 제주로 가서 못다 한 공부를 했다.


케냐에 돌아온 아이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을 활짝 펴고 케냐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아, 이게 케냐야!"

둘째 아이는 자신만의 기억법으로 케냐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 아이들이 자란 고향은 케냐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아프리카다.

오늘도 주유소마다 기름이 없어서 2시간을 기다려 차에 오일을 넣었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 또한 통신사에서 심카드를 등록하라고 해서 1시간 30분을 기다려 일을 처리했다. 여러가지 불편함이 있는 곳이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이기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맘이 편하고 좋은 것이다.

밤마다 비가 내린다. 내 작은 텃밭에 호박, 고추, 케일, 근대 그리고 덤으로 해바라기가 쑥쑥 자라 오른다. 수분을 듬뿍 먹은 흙이 숨결을 내뿜으며 나를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