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담그려고 사온 속이 꽉 찬 배추를 수돗물이 가득 찬 고무대야에 담갔다. 물에 잠긴 배추가 벌떡하고 일어설 것처럼 푸릇하니 윤기가 좔좔 흐른다. 나이로비에서 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엘도렛이라는 지역에서 배달된 배추다. 한국분이 농사지은 배추는 속이 실해서 한 포기에 3Kg쯤 나간다. 열 포기 가량의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서 흙과 검블을 씻어낸다. 초록 잎은 한데 모아서 우거지용으로 삶을 참이다. 삶아낸 우거지는 찬물에서 쓴 물을 빼며 투명한 막을 제거하고 세로로 찢어서 지퍼팩에 포장해서 냉동고에 보관한다. 우거지는 배춧잎이든 무청이든 국거리로 참 유용하다.
엄마는 겨울이 되면 삶아 낸 우거지에 집간장과 들기름, 마늘, 파와 물을 자박자박 넣고 볶아주시기도 하고 된장과 큰 멸치와 파를 잔뜩 넣어서 구수한 우거짓국을 끓이셨다.
우리 가족은 동네입구에서 제일 먼 산아래에서 살았다. 그러나 산너머에 있는 초등학교를 갈 때는 우리 집이 제일 가까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12년을 살던 집은 부엌은 나무로 불을 피우는 아궁이가 있었고 그 위에 검은색 가마솥이 얹혀 있었다. 더운 여름날에는 장독대 부근에 아궁이를 설치해서 국이나 탕을 끓이곤 했다. 과수원과 벼농사를 하시던 부모님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쉴 새 없이 몸이 고되셨다.
아버지는 손이 야무져서 겨울이면 볏짚으로 새끼를 꼬시거나 동네에서 소를 잡기라도 하면 서로 모셔갔다. 고기를 부위별로 잘 자르는 재주가 있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커다란 양동이에 내장을 챙겨 오시곤 했다. 신선한 간과 선지, 천엽과 곱창이 그 안에 담겨있었다. 이런 날은 영락없이 엄마는 큰 가마솥에 미리 우거지를 삶아 내셨다. 우윳빛 쌀뜨물을 가마솥에 붓고 우거진 큼직큼직하게 썰곤 깨끗하게 손질한 신선한 내장과 마늘과 파를 넣고는 국을 끓으셨다. 간은 주로 고춧가루와 집간장으로 맞추셨다. 고기 먹기가 흔하지 않은 시절, 4남 1녀의 자식들은 우거지가 잔뜩 들어간 일명 엄마표 해장국을 잘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