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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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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Jun 18. 2023

깐부여! 울지마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랜 세월 함께 공부하고 일해왔던 나의 깐부가 퇴직을 했다. 그는 나와는 띠동갑으로 그는 나를 깐부라고 부른다. 그만큼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대기를 가득 채우는 생각의 파장으로 우리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10여 년 이상을 지켜보며 그가 얼마나 신독 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장황하고 때로는 칼같이 냉철하고, 또 때로는 엉킨 실타래처럼 도무지 속을 모르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는 소위 대쪽 같은 구석이 강했다. 자애심이 많으면서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가장으로서 자식새끼들을 키워내기 위해 그는  사회의 제도적 불합리를 꾸역꾸역 삼켜왔다. 그래서 30대에도 역류성 식도염과 위궤양, 혈변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그럴법하다. 성깔이 고등어 같아서 불합리한 꼴을 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떤다. 그러다 훅 죽어버리는 고등어처럼 그는 그랬다. 그런 성질머리에 결벽증 환자처럼 부정한 꼴은 용납하지 않는 그가 인생을 살아내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타협할 줄 모르는 성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인생의 파도는 참 아프다. 바람의 방향을 보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가야 힘을 들이지 않고 목적지에 갈 수가 있다. 잔잔할 때는 노를 젓고 폭풍이 칠 때는 바람에 맡겨야 한다. 애써 속으로 저항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누더기가 되어버렸.


젊은 시절 수 년동안 혈변과 식도염을 달고 살았던 그는 철칙으로 '무조건 3식'을 세웠다고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챙겨 먹으며 서서히 건강 회복이 되었다고... 거기에 마라톤까지 하면서 정신도 더욱 담금질이 되었다. 그렇게 살았던 그가 요즘 심히 아파한다. 기실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것이다.



농장주가 꿈이라던 그는 평생 흙 한번 만져보지 않고 책상머리에서만 살았던 사람이다. 겁대가리 없이 농지며 산이며 몽땅 사놓고 관리조차 못하고 있다. 농사라는 게 농장을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그는 알 것이다. 가끔 성깔을 못되게 부릴 때도 있지만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온 그이기에 은퇴 후의 삶에 행복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오랜만에 깐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기울인다.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역류성 식도염인듯하다. 은퇴하면 책을 읽고 기도하는 목가적인 삶을 살고 싶다던 그였는데 예상과 달리 송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원하지도 시작하지도 않은 각종 송사였다. 평생 법 없어도 살만한 사람이었는데 황당한 송사에 휘말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원든 원하지 않든 최근 3년 동안 각종 송사의 파도에 무차별적으로 얻어맞았으니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정직하게 살면 인생살이 손해가 참 많다. 절대기준이 있어야 할 법과 사법기관도 정치재판을 할 때가 많으니 참으로 인생살이 하나님 아니면 어디에 기댈 곳이 없다. 그래도 선한 끝은 있다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지만 그 견딤과 인내의 시간이 쉽지만은 않다.



사람은 자기 생각에 스스로 갇히기가 쉽다. 파도를 보면 어느새 파도가 나를 덮고 있고, 파도 너머 저 수평선을 바라보면 붉게 물든 찬란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강하고 좋은 생각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한다.


나 자신도 올해엔 치유와 전환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익숙했던 사람들보단 좋은 책과 여행, 그리고 홀로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선택해 왔다.


시련의 파고가 높아지고 그의 고뇌가 더 깊어지는 것을 아는 나는 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깐부임에도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잘 되리라는 확신, 그리고 이 고통으로 인해 그가 얻게 될 풍요로운 삶의 깊이를 믿기 때문이다.  


속이 타들어간다는 깐부의 호소에 망설이다 장문의 위로 몇 글자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시련 속에 갇히면 안돼요.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속으면 안돼요. 긴 호흡을 하고 멀리 보세요.  우리에게 무한한 앞날이 있잖아요?!"


답문이 왔다.


"자!"


고등어 같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에게 시련은 있지만 그 시련조차도 축복의 거름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정신없이 비바람에 찢기어도 고통은 잠시다.

뜬금없지만 한 천문학자한테 들은 이야기다.


"별은 스타(star)죠. 왜 스타인지 알아요?"

"................."

"스스로 타니까 스타예요. 스스로 태우며 빛을 내야만 스타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한 존재는 행성이 되는 거예요"


멋진 말이다. 스스로 태우며 빛을 내야 스타가 된다니... 고통과 환란 속에 애간장을 태우며 결국엔 인내의 열매를 맺고 영롱하고 찬란한 승리의 빛을 발하지 않는가.

각자의 별이 더 빛나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태우며 더 성장하나 보다.


깐부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며, 별이 빛나는 밤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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