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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12. 2023

사방이 할매네 집, 밤에 불이 꺼지면 비상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마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춘양 할매들의 정과사랑

불이 꺼진 할매네집 왼쪽이 아흔살 강할매집이고 오른쪽은 95세 할매집이다. 불이 꺼진 집 뒤로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인다 ⓒ 다아름


달이 푸르스름하도록 맑은 밤 자정 무렵이다. 바람이 하도 선선하여 잠시 앉아 있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탕탕탕! 탕탕탕) 할매요! 하알매요! 할매요.....! 하알매요!!"


문이 부서질 것만 같은 요란한 소리! 꿈인지 생시인지 밖으로 뛰쳐나간다. 윗집 사는 강할매가 꽃할매네 유리창을 부서져라 내리친다. 꽃할매네 집에 불이 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 퇴근길에 꽃할매네 집에 불이 안 켜져서 그저 '오늘은 드디어 깊이 잠이 드셨구나' 했다. 꽃할매는 강할매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신다. 홀로 사시는 강할매는 올해 아흔이시고, 꽃할매는 아흔하고도 다섯, 95세이시다.


꽃할매 이름은 모른다. 다만, 젊은 시절 심마니셨던 할배를 따라 약초를 캐셨고, 지금은 아무 혈육 없이 홀로 사신다는 것, 그리고 꽃할매 집에는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꽃할매는 70대 할매에게도 80대 할매에게도 '언제나' '항상' 한없이 베풀어주고 아껴주는 그저 '사랑스러운 언니'였다.


꽃할매는 귀가 어두운 것을 빼곤 허리 하나 굽지 않고 정정하시다. 아침이면 깨끗하게 씻고 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를 올리시고 정갈하게 차려입으신다. 꽃을 좋아하시는 꽃할매는 비료 포대에 온갖 꽃과 채소를 키우시고, 아침마다 정성스럽게 돌보신다. 천생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불 꺼진 꽃할매네 집


녹두콩을 가꾸시는 할매 ⓒ 다아름

녹두 콩 키나 할매 키나 맹 비슷하다("맹"은 이 지역 방언으로 "역시, 거의"라는 뜻이다). 할매는 해가 뜨면 녹두콩을 바지런히 살피신다. 개미가 자꾸 다녀서 열매를 못 맺는다는 것이다. 가끔은 에프킬라를 들고 뿌리신다. 작물을 키워보지 못한 나는 에프킬라를 뿌리면 녹두콩에 해가 가지는 않을지 염려가 된다. 할매가 드실 것이니까 말이다.


꽃할매네 밤은 언제나 환하다. 불을 켠 채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온다. 긴긴 고독의 밤이었으리라! 어느 날은 뒤척이고 또 어느 날은 꼼지락 꼼지락 바느질을 하시거나 부추를 다듬으신다. 분침이 세월을 채워가듯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도록 쪽 가위로 부추를 한 가닥씩 손질해서 곱게 단으로 묶어 이웃들에게 나눠주신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할매의 부추다.


봉화군에서는 올 여름, 보일러 교체에 단열 벽지까지 야물딱지게 월동준비를 해 주었다. 최신식 보일러 스위치를 어떻게 쓸지 모르는 꽃할매는 한여름인데 방이 뜨거워진다고 나를 부르신다. 난방 버튼을 누르신 게다. 또 어떤 날은 늘상 쓰시던 전기밥솥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고 나를 부르신다. 


"할머니, 10분 기다려야 해요. 숫자 보이시죠? 이게 0이 되면 밥이 다 된 거예요!"


한참 후에 꽃할매는 또 "딸! 뚜껑이 안 열려…."(할머니들은 나를 딸이라 부른다) 하신다. 스테인리스 밥그릇, 주걱, 할매는 삼위일체가 되어 밥통 앞에 쪼그려 앉아 대기하셨던 것이다. 20분씩이나...


"할머니, 손잡이를 이렇게 돌리시면 돼요."


새하얀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꽃할매의 환한 얼굴에 닿는다. 늘상 쓰는 밥솥이어도 뚜껑을 열지 못하고, 방충문은 닫을 힘이 없다고 모기에게 뜯기거나 아예 문을 닫고 주무신다. 사람이 늙으면 익숙했던 것도 낯설어지고 문 닫는 것조차도 버거운 것인가.


소식을 들은 동네 맥가이버가 냉큼 달려와 방충문에 윤활유를 듬뿍 뿌려 준다. 꽃할매의 얼굴이 다시 편다. 동네 맥가이버는 쓰다 남은 윤활유가 담긴 파란색 깡통을 내 손에 꼭 쥐어주곤 사라진다.


안 움직여... 죽었는가비!


할매네집 뒷길 할매집 뒷길이다. 담장이 가로막혀 있어 한 사람 정도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작은 창으로 할매를 찾아볼 수 있었다ⓒ 다아름


그런 꽃할매네 집 불이 꺼졌다며 발을 동동대시는 강할매의 음성과 눈빛에 두려움과 당황함이 교차한다. 무언가를 해야했다. 


"할머니, 저랑 뒷길로 가서 확인해볼까요?!"

"무슨 일이에요?"


설비 가게 하시는 김씨 아저씨가 퇴근길에 하도 큰 소리가 나서 오셨단다. 김씨 아저씨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강할매를 부축했고 우리는 불빛을 비추며 한 사람 정도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집 뒷길을 조심히 지나간다.


집 문이 다 잠겨 있다. 강할매가 쓰러지실 것만 같았다. 작은 창문이 하나 열린다. 김씨 아저씨가 까치발로 방 이곳저곳에 등을 비춰본다.


"할머니! 저기 누워계시네요!"
"어디... 어디? 안비어……. 흑…. 안 움직여……. 죽었는가비!"
강할매가 더 당황하신다. 우리의 시끄러운 소리와 불빛에 드디어 애타게 찾던 꽃할매가 일어나셨다. 꽃할매는 눈을 비비며 마루에 불을 켜고 문을 따 주신다.
"내가 오늘 눈 병원에 갔다 와서 잠이 일찍 들었어……. 아이고."
강할매가 울먹이신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그날따라 잠을 이루지 못한 강할매는 꽃할매집 불이 꺼져 놀라 달려온 것이었다. 할매가 얼른 마실 것을 내어다 강할매를 먹이시곤 다독거리신다. 울음을 멈춘 아기처럼 강할매는 금세 평온해졌다.


한참 후 강할매는 침소로 돌아가셨고, 꽃할매는 불을 환히 밝혀놓았다. 꽃할매는 아무 말 없이 아흔 살 동생을 따뜻하게 품어주셨다. 한밤중에 이게 무슨 일인가! 사나운 모기에 뜯긴 팔다리의 미칠듯한 가려움보다도 이 현실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서로를 돌보는 춘양 할매들

날이 밝아온다. 아침 6시부터 부산나게 출근하는 길에 만난 정할매에게 간밤의 일을 털어놓았다. 정할매는 "얼마 전에 11시가 넘었는데 강할매가 문을 두드려서 놀라서 나갔다아이가!....하이고.... 그때도 우리집 불이 꺼져 있어 놀라서 그랬다드라"며 강할매가 그러는 것을 그러려니 하라고 말씀하셨다.


영이네 할매는 70대 초반이시다. 해가 뜨면 영이네는 밭에서 딴 토마토, 각종 채소를 갈아 강할매와 이웃 언니 할매들에게 매일 친절 배송하신다. 할매들은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돌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8.6%는 독거노인이다. 봉화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만2천여명으로 군 인구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중 독거노인이 4,500여 명이니 노인 인구 중 37.5%나 된다. 우리 군 전체 인구 15명당 1명꼴로 독거노인이며. 2.5명당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셈이다.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춘양의 할매들을 보며 그 문제지를 마주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나는 춘양의 '서라운드 할매'에 살고 있으니까. 앞뒤, 동서남북 사방을 보아도 모두 할매들이다.


할매들의 수십 개의 눈이 나를 향하니 어딜 가나 안전하고 끼니를 거를 권리도 없다. 왜? 할매들은 결코 내가 챙겨 먹지 않는 꼴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내가 할매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장에서 물건 사다드리기, 음식 나눠드리기, 그리고 살갑게 인사하는 것 정도다.


춘양의 아침 아침 해가 "쨍"하고 올라온다. 어젯밤일은 과거사가 되었다. 할매 마음처럼 푸르고 맑다. 그리고 아름답다 ⓒ 다아름


강할매는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고 정할매는 배추 모종을 심으러 나가신다. 95세 꽃할매는 개미 때문에 녹두 콩이 못 자란다며 콩잎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개미를 잡으신다.


천생 여자이신 우리 95세 꽃할매는 정말 조그마하시다. 발이 쪼그라들었는지 200밀리도 안 되는 작은 신발은 신는 할매... 참 나비 같다. 꽃할매가 심어 놓은 녹두 콩잎이 할매 손 만한다. 녹두 콩 키나 할매 키나 비슷비슷하다.


춘양 할매들에게 배운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는 할매들의 서로에 대한 정과 배려, 사랑을 말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필요한 것이 그리 없어진다. 결국 나라는 '하나의 열매'를 결실하고 나면 끝나는 것이다. 평온한 아침이다. 이곳은 봉화군 춘양이다.          


덧붙이는 글 | 저에게는 엄마가 참 많이 있습니다. 낳아준 친정엄마, 그리고 '춘양 엄마'들입니다. 젊은 할매들은 저를 '딸!'이라 부르고 당신을 '엄마'라고 부르라하십니다. '춘양엄마'라구요. 저의 춘양엄마들의 삶이 언젠간 또 저의 삶이 되겠지요? 함께 의지하며 살펴주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도시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따뜻함입니다. 사람은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맞습니다. 오늘도 함께 호흡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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