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 마을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겨울철 대봉의 맛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 계절의 흔적은 모두 사라진 앙상한 가지들이 시원하게 바람을 쐰다. 비움의 미학인가. 꽃이 피고 잎이 나면 그런대로 아름답고, 열매를 맺으면 그 모습대로 또 매력이 있다. 겨울이 되면 빨간 열매 달린 마가목 같은 나무들이 눈에 톡톡 띈다. 눈이 오면 더 눈부시게 보이겠지.
한동안 영상 18도를 넘나들며 봉화 '춘'양은 이름처럼 늘 봄이었다. 그래서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철없는 봄이라지만 덕분에 애타는 어르신들의 한숨도 풀고 밀린 일들도 해치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철이 없는 것이 항상 문제는 아닌가 보다. 아들이 때를 놓쳐 심은 배추가 속이 안 찼다며 정이 할매는 나를 볼 때마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배추 만 포기를 심었는데 속이 안 차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발을 동동 굴렀던 우리 할매는 철없는 날씨 덕택에 배추속을 따북따북 빵빵하게 채워 키워냈다. 겨울이 무색하게 말이다.
계절은 철이 없었지만 배춧속은 철든 아이마냥 속이 꽉 찼다. 애태우며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었다. 주말 내내 온 가족과 일손들이 와서 배추를 캐내고 급하게 소금에 절였다. 영하로 수직 강하 직전 마지막 날에 그렇게 정이네 할매는 때를 맞췄다.
겨울이라고 겨울이 아니고, 봄이라고 다 봄은 아닌 것이 인생사 이치인가? 겨울에도 따스운 봄기운이 돌고, 봄에도 매서운 추위가 있으니 사람이 때에 자신만만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춘양 할매들 곁에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철없는 날씨와 한파 사이를 피해가며 철이 든 배추, 그리고 여전히 장을 채워가는 어르신들의 삶은 나에겐 큰 책이다. 비록 일손을 도와드리지 못해도 눈으로 귀로 생각의 박자를 느낄 수 있다.
감 위로 볏짚을 깔고 대봉을 올리면 익어도 형태가 틀어지지 않는다.
어르신들 고생하신다고 윗마을에서 약초 재배를 하시는 김 사장님이 대봉을 한가득 갖고 오셨다. 이바구계의 킹이라고 할까, 전생에 아줌마였음이 분명하다. 동네 할매들과 앉아서 이바구떠는 것을 보면 악어 이빨을 타고난 것이 분명하다. 할매들은 덧버선까지 껴 신고 있는데 김사장님은 맨발로 마룻바닥을 잘도 디디신다.
"발 안시럽니꺼? 양말을 신어야재!"
정이네 할매가 한 마디 하신다.
"어머니! 저는 펭귄 아니 개발인가 봐요. 한겨울에 맨발이어도 발이 하나도 안 시려요!"
설명이 필요 없다. 악어 이빨에 개발을 가진 김 사장님은 아마도 좋은 약초를 많이 드셔서 그런가 보다.
"대봉이 지금이라서 흔하지 난 20년 전쯤에 처음으로 대봉이라는 것을 맛을 봤어. 얼마나 맛있던지. 와! 세상에 이런 과일이 있나 싶었지!"
"왜요?"
"할매요, 아시죠? 우리 봉화에는 대봉나무가 없고 땡감 나무만 있었잖아요. 달달한 감이 먹고 싶은데 떫으니까 우리 어머니가 소금물에 한 며칠 절여서 주면 단맛이 도는 게 참 맛있었잖아요? 근데 이 대봉시는 꿀처럼 달달한 것이 먹잘 것도 많아 입에서 살살 녹으니. 와! 세상에 무슨 이런 과일이 있나 싶었어요. 얘처럼 특이한 과일이 있을까? 얜 진짜 특이해! 아니 정말 특별해!"
"왜요?"
"말리고, 끓이고 소금에 절이고.... 게다가 또 눈 속에 얼어도 먹을 수 있잖아!"
김 사장님 어머니는 오래 전 돌아가셨다. 살아계신다면 올해 아흔하고도 일곱이시다. 김 사장님의 모친이신 필녀 엄마는 몸이 작아서 평생에 산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캐셨다. 그래서인지 몸무게가 40킬로를 넘어본 적이 없으시단다. 그런 엄마는 겨울이 다가오면 대봉 100여 개를 쌓아두고 2월까지 겨우내 하루에 하나씩 꺼내 드셨단다.
"우리 필녀 엄마는 음식하는 걸 정말 싫어하셨어. 평생 밥상에는 3찬이었어. 김치, 호박잎 쌈, 된장. 그래서 아버지가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이었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필녀엄마가 겨우내 대봉을 쌓아놓고 드시는데 아무래도 대봉을 드시면서 날짜 셈을 하셨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그리고 또 아버지가 안 계시니 대봉을 식사 대용으로도 드셨던 것 같고."
그렇다. 하루에 한 개씩 100여 개를 먹고 나면 봄이 온다.
"엄마는 바로 익혀 먹을 것과 오래 보관할 것들을 나눠서 광에 보관하셨어. 봉화는 겨울이 유독 추우니까 대봉을 따뜻하게 해야 얼른 먹을 수 있어. 볏짚 사이로 대봉을 넣으면 빨리 익고, 감끼리 서로 안 부딪치니 모양새도 좋아."
그랬다. 김 사장님이 가져오신 대봉들은 으깨진 것 없이 먹음직스럽게 볼그족족 잘도 익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정정한 어르신들 앞에 둔 대봉 사이로 필녀 엄마 생각이 밀려오는것만 같았다. 김 사장님은 볏짚까지 바지런히 구해다가 감을 차곡차곡 쟁여준다.
"어머니! 감 익으면 잊지 마시고 익은 놈 먼저 하나씩 챙겨드세요!"
천연비타민제이자 항암과 숙취해소에 탁월하다는 대봉. 사장님 말씀처럼 대봉은 정말 특이한 과일이다. 말려서 곶감으로도 해먹고, 눈에 얼면 언대로 먹을 수 있고, 떫으면 소금물에 절여서라도 먹을 수 있다. 너무 익으면 찹쌀가루를 넣어 대봉죽으로 끓여먹을 수가 있으니 귀한 과일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임금에게 진상도 했으리라.
텅 빈 집에 붉은 대봉 100여 개를 가득 재워놓고 필녀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세월의 저너머 고달픔도 달콤함에 녹여내고 빨갛게 익은 대봉시 색에 마음 불을 밝혔으리라. 이렇게 대봉을 다 먹고나면 어느덧 꽃피는 봄이 오겠지.
김 사장님은 자식을 다 키워낸 지금에서야 엄마가 겨우내 드셨을 대봉의 의미를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하신다. 존재하며 시간을 세고 세월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도시에 나간 새끼들 다시 볼 그날들을 말이다. 철이 들고 나서야 알았다. 필녀 엄마에게 대봉은 그리움이자 기다림을 달래는 '겨울꽃'이었음을 말이다.
타들어 가는 그리움과 애간장 타게 마음 고생한 세월, 그리고 자식 셋을 가슴에 묻고 넷을 여린 몸으로 키워내며 눈물에 가슴을 저몄을 어머니, 그 어머니의 사랑이 꼭 대봉을 닮았다.
덧붙이는 글 | 특이함을 넘어 특별한 과일, 대봉. 우리의 삶도 그렇게 대봉처럼 특별하답니다. 칼칼한 한파가 밀려오지만 뭐 어떨런지요? 눈속에도 대롱대롱 매달려만 있다면야 달곰한 별미가 되는데요. 모든 것은 지나고 또 지난다고 하지요? 존재함이 바로 특별한 힘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