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 이전에 나였다
큰아이의 기저귀를 오만장 정도 갈았을 즈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목마름이 정말 간절했다.
아이 위주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인생과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내가 작가교육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일은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글을 쓴다는 차원을 넘어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을 이루고 살아가는 선배 직업인과의 만남은 직업과 사람에 대한 나의 시각을 확장시켰다.
글쓰기는 철저히 혼자가 되는 일이며 작가만의 고유한 시각과 세계관이 드러날 때 개성 있는 작품이 된다. 그래서 철저히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철저히 외롭지만 혼자만의 세계에만 몰입해 있어도 안된다.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교육원에서 배운 것은 글쓰기의 기술적인 방법 외에도 다양한 세계관의 존중이었다.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게 생겼듯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주제에 대한 생각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다르게 생각했고, 모두가 다르게 썼다. 다른 동기들의 뼈와 땀이 녹아있는 대본들을 읽어보며 다양성을 발견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내게 없던 자질이었다. 나 역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삼십여 개의 대본들을 하나하나 읽었고, 감상문을 작성했고 나눴다. 내 글에 대한 피드백도 받았다. 그들은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처럼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부디 포기하지 말기를..)
완벽히 동떨어진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고민을 지니고 있고, 방황을 한다. 그것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글이어서가 아니라 기술 너머에 담겨있는 삶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다. 하나도 똑같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도 똑같지 않은 삶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의 고민과 성찰들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와 어느 부분 닿아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가 고립된 채 살아가지만 반대로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고리인 것이다.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이며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좋은 방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사랑스러우면서도 측은하다.
다양성과 고유성의 어울림
동기들 사이에서 흘러 다니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작가 지망생이 글을 쓰기 전 취재의 과정에서 인생이 360도 달라져 버렸다는 거다. 그 이유인즉슨 쓰려는 글의 소재인 외도를 취재하다 정말로 외도를 하게 되어버려 이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한계(?)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며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 선생님,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써보고 싶은데 개인적 경험이 없어 쓰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쓰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
선생님의 대답은 간결했다.
“ 담배 있니? ”
선생님은 글을 쓰시는 분이고 연세도 있으셔서 많은 답을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너어무 솔직하게도 “모른다” 고 하시곤 담배를 찾으셨다.
나는, 조금은 실망했던 것도 같다.
술집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 놓인 맥주잔에 맺힌 기포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도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아가는 흔들리는 인간이라는 것을.. 글쓰기의 비법을 안주 삼아 목소리를 높이는 동기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다르게도 혹은 비슷하게도 산다는 걸...
비슷한 것이 아니면 다른 것이고,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흑백논리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쓰면서 내가 깨달은 핵심은 인간은 비슷하기도 또는 다르기도 하다는 것, 인간 안에는 다양성과 개별성과 고유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가고 싶다. 내가 그렇듯 타인의 그러한 욕구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비난받는 모든 이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당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