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눈이 오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본 눈이 반가웠는지 작은 아이는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자고 졸라댔다.
경험상 그 정도의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나는 설명을 했다.
- 눈사람은 더 춥고 눈이 많이 와야 만들 수 있어~ 아마 이 정도 기온으로는 눈이 뭉쳐지지 않을 거야..
눈이 내리는 것만 보아도 눈이 뭉쳐질지 아닐지 아는 것은 살아온 세월에서 축적된 일종의 지혜인데, 아이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설득을 하다 지쳐 반강제로 놀이터에 끌려갔다.
역시 눈은 뭉쳐지지 않고 흩어지기만 했고 눈사람은커녕 눈사람의 눈두덩이 하나 만들질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열심이었다.
자꾸만 부서지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또다시 만들었다. 눈이 장갑에 엉기기만 하고 지들끼리는 뭉치지 않아 얇게 쌓인 눈을 계속 긁어모으기만 했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그러모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아이의 성장과정에 반드시 수반될 이러한 날들, 이러한 기다림을 나는 얼마나 많이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만들지 못할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할 때 그러니까 실패가 뻔히 보이는 일을 굳이 하겠다고 할 때, 끝까지 반대하고 싶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부모,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하는 부모, 실패가 불 보듯 뻔해 아이가 마주할 실패가 안타까워서 혹은 자기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 때문에 아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부모를 드라마에서 내 주변에서 많이 보았는데 그들과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가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할까, 좌절할 것임을 알고도 제 뜻대로 하도록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아이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줘야 할까, 두발로 흙을 밟도록 해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이 아이에게 더 이로울까?
나는 후자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의 사회를 보면 나의 선택이 과연 최선일지 궁금증이 인다.
공부, 대학, 취업, 결혼까지 부모의 세팅대로 살아가는 상류층의 자녀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러한 그들이 사회의 요직에 앉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나의 교육 철학이 시대와 맞는 것인가 하는 혼란을 겪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영어나 수학학원을 다니지도 국영수과사의 과목을 학원에서 따로 지도받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각종 대회를 나가 학생기록부에 기록될 영광의 수상 같은 것들도 하지 않는다.
학원은 각 1개씩만, 운동이나 예체능을 하는 것이 전부다. 아이는 아이답게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인데,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아이만
놀고 있다.
엄마들끼리 만나면 어디 학원이 좋다더라 무슨 과목을 시켜야 한다더라, 우리 애는 뭐뭐를 시키는데 뭐뭐를 더 시켜야겠다.. 어디 학교가 분위기가 좋다더라, 혹은 애가 초등 고학년인데 아직도 거기 있으면 어쩌냐, 빨리 학군 좋은 곳에 집을 마련해라 등등...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불편해진다.
한국사회가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데,
그 불평등에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바로 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인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말을 자격지심 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둔함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좁다는 서울 땅에다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서 치솟는 집값 경쟁에 편승하고 싶지 않으며,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는 입시경쟁에 벌써부터 아이들을 밀어 넣고 싶지도 않다.
내가 지금 기여하는 것들은 반드시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집값은 누가 만들었을까,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아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처럼 되고 싶은 사람들의 합작품이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세상은 누가 만든 것일까?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과 욕망을 쫒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러니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거라고, 가난이 가난을 낳고 부가 부를 낳는 계층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비현실적 철학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불평등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편승해 동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웃기지도 않는 개똥철학이라고 누군가가 비난한대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불합리한 제도와 구조에 동의하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것, 앞으로도 내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집의 작은 사람들도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합리함에 순응하지 않는 것, 불합리한 구조 또한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 또한 아이들의 선택사항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