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주글주글하고 하얀 팔에는 붉은 장미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다. 여든의 그녀는 내게,
" 언니, 오늘 점심 뭐야? " " 언니, 오늘 바깥 날씨가 어때?" " 언니 왜 이제와?" "언니, 담배 한 대만 줘봐"
기도하러 오신 신부님에게
" 오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 오빠, 오빠, 오빠~"
그녀는 나와 수녀님에게 늘 `언니`라고 불렀다. 그녀의 장미가 영구히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그 시절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고, 나는 슬펐다. 왜 슬펐는지는 모르겠지만 슬펐다. 허스키한 목소리에서 갈라져 나오던 오래된 노래의 음절은 쓸쓸하고 구슬프고 처량하고 허무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만난 건 시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요양병원에서였다.
앞니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도시락 뚜껑을 열어드리며 옆자리의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노래하고 있었다. 봄처녀의 까치발처럼 춤추는 목소리는 설레고, 행복하고, 기뻤다. 누군가에게 노래하는 기쁨을, 노래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시절은 거기에 멈춰있었다.
노래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던 그녀의 목소리가 빨간 장미의 그녀를 불렀다.
두 사람은 하모니를 만들었고 그 하모니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모두가 어디엔가 멈춰있다고.
때로는 찬란했고, 때로는 구슬픈 그 시절에.
소설가 박완서 씨 모친의 그날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눈앞에서 북한군의 총을 맞던 날에 머물렀고, 그것은 그녀의 가슴에 박힌 잔인한 말뚝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을 그날에 갇혀버린 엄마를 안으며 목놓아 울었다.
그녀들이 머무는 시절은 어디일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일까, 가장 아픈 시절일까.
나도 어디엔가 머무르게 될까. 어느 시절에 머무르게 될까. 어떤 고통을 살게 될까, 어떤 행복을 살게 될까.. 어떤 날을 기억하게 될까.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남는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것들을 지나왔고 앞으로도 지나갈 테지만,
내 마지막 몇 년의 기억은 어딘가에서 멈출 것이고
나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은 지금의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리라.
그녀는 어떤 시절에 머물러 있는지, 그녀의 시절은 행복했을지 아팠을지.
출구를 잊은 채 기억에 갇히고 만 그녀들의 시절은 어쩌면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팍팍한 삶 속에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일, 잊지 못할 상처에 잠 못 이루고 잊지 못할 시절을 그리워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 벼랑 끝 공포를 느끼고 그럼에도 모질게 이어지는 목숨을 징그러워하며 그런 개인과는 별개로 여전히 가차 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원망하는 삶, 그런 삶이 어디 한둘이고 하루 이틀이던가...
삶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아름답게 때로는 야멸차고 잔인하게 인간의 멱살을 잡아끈다.
살아있게 하면서 천천히 죽이기도 하고, 죽게 하면서 모든 것을 박탈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두렵다. 살아내야 할 날들이, 허락된 날들이 어느 만큼 인지도 모른 채 걸어가야 하는 길이, 목적지도 모른 채 올라탄 열차처럼 막연하고 두렵다.
삶과 지금을, 다가올 미래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나의 알츠하이머는 어떤 시절로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