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한 남자를 알고 사랑하고 결혼을 통과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줄곧 느껴왔던 감정은 안타깝게도 안정감이나 편안함이 아니었다.
고립감과 외로움, 단절감은 그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곁에 있는 감정이다.
왜 나는 함께이면서도 외로운 걸까? 왜 단절감을 느끼는 걸까?
고립감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는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선택과 자유를 사랑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사랑하며 그것을 희망한다.
구속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혼자만의 시간을 미치도록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구속받지 않는 선택과 자유는 소중하다. 혼자만의 시간 역시 소중하다.
그에게 자유가 소중하듯 나에게도 자유는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하는 정서의 무게는 다르다.
남편이 하루라는 시간을 아이들 걱정 없이 일할수 있는 자유를 당연히 누리는 것, 근무의 연장이라는 회식을 아이들을 재워야 하는 걱정 없이 참석하는 것, 주말에 아이들을 돌볼 의무 없이 친구와 만날 자유를 누리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아이들 곁을 언제나, 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유에 수반된 정서적 무게는 내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조차도 완벽한 자유를 가질 수 없는 나의 하루는 전적으로 아이들의 시간에 메어있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빨래나 청소 같은 집안일을 마무리해야 아이들이 귀가했을 때 간식을 챙겨주거나 숙제를 봐줄 수 있고 금방 찾아올 저녁식사 시간도 준비할 수 있다.
그 책임감은 자유의 구속이고 전적으로 내게만 반복되는 구속에는 부담이라는 무게가 더해지며 고립감으로 변한다.
이렇게 가정적인 남편이 없다는 말에는 남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도움`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의 내면을 반영한 탁월한 말이다.
결혼으로 인해 단절된 사회적 고립이 아닌 정서적 고립감은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 탄생되었다.
공감의 부재
고립감은 곧 외로움을 소환하고, 외로움을 말하는 내게 그는 다들 그렇게 산다며 내가 느끼는 외로움을 보편화한다.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견디기 힘든 고립감은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다.
내가 느끼는 정서적 어려움(?)은 그에게는 만인이 느끼는 보편된 감정이기 때문에 결코 특별한 공감을 받을 수가 없다. 모성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그에 반해 부성은 처절한 희생을 통해 생성되는 아주 특별한 덕목이 된다. 단절감은 이러한 방식으로 탄생된다.
이 모든 게 다 나의 기질 때문일까?
결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나는, 그렇다.
가슴에 블랙홀이 있다. 사랑받고 안전하게 자라고 싶었던 마음이 가슴에 블랙홀을 만들어 버렸다.
그 무엇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을 블랙홀과 함께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블랙홀은 1년 365일 작동을 멈추지 않고 늘, 언제나, 사랑을 갈구한다. 나는 나의 그런 충동적이고 불완전한 면을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격한 굶주림이었으며 끔찍한 빈곤이었기에 어지간한 사랑으로는 채울 수 없다. 이 블랙홀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임을 뼈아프게 인정해야만 했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남편을 무척 원망했었다. 그는 왜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건지에서 시작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창조적인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마주하는 모든 분쟁들은 너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어려움은 그에게 어려움이 아니었으므로 나만의 어려움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밝았고 그러므로 문제는 나만의 어둠이었다.
나만 어려웠고 나만 어두웠다.
이 작은 공동체에서 문제아는 나뿐이었기 때문에,
외로웠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고, 나만 아무렇지 않으면 문제는 없는 것이다.
날카로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욕망 앞에서 자신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 내 안 어딘가에서 슬픈 목소리가 들려온다.
"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런다고 해도 너까지 나를 모른 척하면 안 되는 거잖아... 너만은, 너만은 내 고통을 알아줘야 하는 거잖아.."
살아오며 내가 내렸던 숱한 선택들을 실수라고 생각하며 후회했다.
사랑할 주제가 안 되는 사람인데 사랑을 해버렸고,
자식을 키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인데 자식을 낳았다고. 내 인생은 전체가 실수라고 제 능력도 모르고 실수만 저지르는 대책 없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지난날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선택들은 과연 실수였을까? 그 시간들은 배움이 아니었을까?
그때도 나는 사랑에 대해 배우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숱하게 넘어지면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넘어져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생에서 사랑 하나만은 꼭 배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