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언제나 아프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나의 이상형은 따듯한 사람이었다.

늘 곁에 있어주고, 곁에 없을지라도 함께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가슴과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진실로 그런 뭉근한 따스함을 오래도록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때, 그것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인생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상형과는 정반대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편은 독립성을 추구하며 자유를 사랑한다. 멀리 날아가기를 꿈꾸고 그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목마름을 느낀다. 결혼반지 따위는 답답해서 껴지 않은지 오래이며 본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끔 있는 나의 저녁 약속에 새벽까지 귀가하지 않더라도 절대 전화 한 통 걸지 않고 아주아주 깊은 단잠을 잔다.

그는 내게도 독립적인 여성이 되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한 가치를 몸소 실천하려고 하면

그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가 되어버린다.

독립적인 여성이 되라고 해놓고 가정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해 논하면 왜 국회로 가지 않고 집에 있느냐고 한다. 페미니스트랑 사는 게 피곤하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부분에서만 내가 독립적이 되기를 바란다. 가령, 본인이 쉬고 싶은 주말에 내가 애들을 데리고 혼자 외출하거나 혹은 나 혼자 애둘을 데리고 멀리멀리 여행을 가버리거나 혹은 나 혼자 애둘을 데리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거나... 그가 원하는 것의 핵심은 혼자서 자. 유. 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외로울 때쯤 가족이 그 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런 자기중심적 독립성은 그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었고 나는 자꾸 지쳐갔다. 힘들고 괴롭고 외롭다고 말했었고 남편은 내 탓이라고 했다.

내가 별나서,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자라온 과정이 평탄치 못해서 내 문제여서 그런 거라고 10여 년간 자책해왔다. 뿌리 깊은 자책감은 나를 갉아먹어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상형의 대척점에 선 남자와 결혼이라는 모한 을 저지른 걸까?

결혼 전 연애기간을 포함해 내게 고백해오는 이성이 적지 않았음에도 나는 왜 그들을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왜 내게 필요한 이상형을 찾지 않은 걸까?

모두가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들은 먼저 손을 내밀었고 먼저 다가왔다. 모든 손들이 모조리 진심이라고 할 수도 또 모조리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건만 나는 왜 그 모두를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와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아주아주 명징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사랑을 보여주면 저건 거짓이라고 나한테 그럴 리가 없다고 도망치기만 했고 거절하기 바빴다. 그리고 조용했던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다.

내가 챙겨줘야만, 내가 먼저 다가서야만 하는 사람이 진심일 거라고 믿으며.




엄마 같은 남자를 선택했다.

내가 챙겨주어야만 했던 엄마 같은 남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익숙했기에

엄마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게 실은 엄청 힘들었으면서 죽도록 괴로웠으면서도 또다시 엄마처럼 먼저 챙겨주고 다가서야만 하는 남자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원한 줄 알고서, 진실로 진실로 원하는 것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사랑이었으면서도.

그렇게 내 인생은 엄마로 시작되어 엄마와 똑. 같 은. 성격의 남자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명하지 않은 선택은 대물림이라는 방식으로 세대에서 세대를 건너왔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모른 채 아이 둘을 낳았고,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괴로워하고 있다.

기억이 허락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결혼이라는 롤모델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기억 속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죽어갔고, 엄마는 매일매일 내게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부부가 어떻게 사랑하고 서로 의지하는지 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안전 기지라고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사용법 역시 알지 못한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안전 기지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가 내게 본인의 힘든 점을 토로하고 털어놓는 것을 볼 때 내가 그의 안전 기지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나의 안전 기지인 건지는 미지수다.

이것은 나의 결핍에서 오는 문제인 걸까 아니면 남편의 문제인 걸까.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그것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자기만의 결핍이 있고 나는 나만의 결핍이 있다

그도 나도. 각자의 결핍에 대해 스스로 수용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3년의 또 다른 시작이 될지 13년의 끝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 두 사람에게 달렸다.

늘 그렇듯 깨달음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