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삶
생명, 젊음, 사랑, 사람,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다.
이 계절이 끝나면 다른 계절이 찾아온다. 같은 계절인 듯 보여도 다른 계절이다.
어제 내린 비와 오늘 내리는 비는 같아 보여도 다른 비다.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내리는 다른 비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새로움을 산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날 다른 시간인 것이다.
새로움을 산다는 건 과거와 이별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루와 이별하고 계절과 이별하고 삶과도 이별한다.
죽음은 삶의 매 순간에 내재되어 있다.
오늘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날이 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도 죽음 이후에는 다시 삶으로 복귀할 수 없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결국에는 끝이 나고,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은 사람도 결국에는 떠난다.
모두가 죽거나 떠나고 끝을 맞이한다. 세상 모든 인간이 그렇고 삶이 그렇다.
비가 떠난 흐린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나는 비와 이별했고 검은 밤을 만날 것이지만 비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비와 하나가 되고 싶었고, 비를 껴안고 싶었다.
비와 함께 흘러 강으로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었다.
비와 하나가 될 수 없고 결국엔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 슬펐다.
그래, 다 떠나가라.
죽음을 맞이한 인간처럼, 흘러가는 계절처럼 다들 가버려라. 나는 이 자리에서 나의 끝을 맞이하고 산산이 흩어져버릴 테니 다들 그렇게 떠나버려라..
가슴속에 야무지게 꾹꾹 눌러 담은 서러운 눈물을 목구멍으로 쏟아 버리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안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매 순간이 새날이고 새 계절이듯, 지나간 순간을 버리고 새날을 살아야 한다는 걸.
새날을 맞이하는 것처럼 삶의 끝도 담담히 맞이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누군가의 하얀 뼛가루 앞에서 통곡을 하고, 누군가를 덮은 흙더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작은 인간일 뿐이라는 걸,
나는 고작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안다.
지나간 빗물을 붙잡고, 지나가는 계절을 붙잡고, 결국 멀어질 사랑을 붙잡고, 죽어갈 사람을 붙잡고만 싶다.
빗물이 되고 계절이 되고 사랑이 되고 사람이 되고 싶다. 멀어지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서글퍼서 차라리 그들이고 싶다.
그들 안으로 들어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그러면 이별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삶과 운명의 야멸참이 영원을 용납할 리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해도 내가 맞이해야 할 것은 결국 이별이 될 것이다.
나는 모두를 보내며 소매로 눈물을 훔칠 것이다.
부모 잃은 어린애처럼 헤매면서 살아갈 것이다. 눈부신 사랑, 찬란한 젊음, 따듯한 우정의 영원을 꿈꾸며 그리워할 것이다.
고요히 담긴 맑은 소주를 턱을 괴고 바라본다.
술잔 속에 많은 이들과 많은 날들과 무수한 그리움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누구도 듣지 않을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으며 잔의 물기를 손가락으로 가른다.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빗소리의 흐느낌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또 다른 비구나.. 또 이별이 되겠구나...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이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