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립 속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며 울지 말라던 어느 시인의 시처럼 나도 사람이라 그토록 외로웠던가.

외로움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빈 그네가 친구였고, 홀로 붉어지던 노을이 친구였고, 잎사귀가 많은 커다란 나무나, 바람에 흔들리던 작은 민들레가 친구였다. 다들 외로운 친구들이었으므로 나도 따라 외로웠다.

때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랑했지만 모두가 떠나갔다.

여러 번의 이별을 겪으며 깊은 슬픔에 빠진 나는 결심했다.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늘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노을이나, 민들레나, 커다란 나무만 사랑하겠노라고.

그 친구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고 어디에나 있어주었다.




모두가 언젠가는 떠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서로에게 다가간다.

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단단한 경계를 세운다.



<넘어오지 마시오> 또는 <들어오지 마시오>의 경계이다.

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먼저 다가서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 유일한 친구는 노을, 민들레, 커다란 나무,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책은 사람이다.

책은 경계를 함부로 넘어오지 않으며, 나를 두고 떠나가지도 않는다. 책은 나를 비난하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은이가 쓴 한 줄 한 줄, 그 영혼의 발자국 따라가는 일은 신비롭고 고요한 산책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젓한 숲길을 산책한다. 평화롭고 외롭지 않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나무나 붉은 노을처럼 어디에나 있고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속의 사람들은 죽어도 영원히 살아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그렇고 페스트의 타루가 그렇고,

자기 앞의 생의 로자 아주머니가 그렇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런이 그렇고, 책 읽어주는 남자의 한나가 그렇다.

이야기를 쓴 그들 또한 죽었으나 살아있다. 그들과 진정으로 이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별에 대한 불가능성 때문에 책은 사랑할 수밖에 는 살아있는 존재다. 책은 나에게 종이와 활자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




이별하게 될까 두려워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기댔으므로 가슴 아파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내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집착하게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바로 책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짝사랑만큼 편한 게 없다고. 그런데 나는 짝사랑마저도 할 위인이 못된다. 그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알아서 그 아픔을 견디기가 너무나 싫고 두려워서라도 지레 포기하고야 마는 부서지기 쉬운 유리 같은,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 큰 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붉게 물든 노을과 책을 사랑한다.






다칠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에는 반드시 상처와 외로움이 따른다. 꿈결 속에만 머물 수 있는 사랑은 없다. 그 상처들을 지나고 나야 성숙해진다.

상처 받기 두려워 더 이상 사랑을 시도하지 않으려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언제까지고 성숙이 아니라 미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숙은 나쁘기만 할까? 우리 세계에는 성숙만, 완벽함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성숙하면 성숙한 대로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각자의 의미를 지닌다.

모두가 같은 모습이 아니라서 새롭고 다채로운 것이 세상이므로 성숙하다고 추앙을 받고 미숙하다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의미를 지닌다.



나는 미숙한 사람이다.

그 결핍과 미숙함이 의 글 곳곳에 묻어있다. 그러나 믿는다. 바로 그것이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오늘도 또 다른 친구와 함께 걷는다. 내 고립 속으로 책 속의 사람이 걸어 들어와 손을 내민다.

종이와 글자로 이루어진 사람. 영원히 이별하지 않을 사람과 함께 는 충만한 길.. 그런 길은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책은 더 이상 지혜가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