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아빠네 아빠는 할아버지죠? "
" 응, 그렇지~ "
" 그럼 엄마네 아빠는 어딨어요? "
" 응~ 엄마네 아빠는 엄마가 니 나이일 때 아프셔서 돌아가셨어~ "
" 그렇구나... 엄마 아빠 없어서 슬프겠다.. "
" 예전엔 슬펐는데 지금은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늘 그리웠다. 아버지의 자전거가 그리웠고, 아버지의 음성이 그리웠고 아버지의 품이 그리웠다. 아버지와 함께 놀던 시골집 마당이 그리웠고 아버지의 손길에 꿀럭꿀럭 시원한 물을 내뿜던 펌프가 그리웠고, 나무 그늘에 앉아 모내기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날이 그리웠다. 작은 나를 번쩍 안아 올리던 아버지의 두 팔이 그리웠고 공중에 붕 떠 까르르 웃어대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누렁이랑 놀다가 아버지의 자전거 소리에 작은 꼬막 발로 흙바닥을 달려가던 날들이 그리웠고
아버지가 입에 넣어주던 달콤한 대추가 그리웠고
아버지의 효자손도 그리웠고 아버지가 자주 보던 옥편도 그리웠다.
죽은 아버지의 소식을 묻자 엄마는 화를 내며 안 좋은 말들을 했다. 아버지의 얘기를 하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기에 아버지가 떠난 여덟 살의 어느 날부터 두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 내가 먼저 그에 대해 친정엄마에게 물은 적은 없다.
엄마에게 아버지가 어떤 남편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충분히 보낼 기회가 없었고
충분히 그리워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없어야 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부인되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딸이기에 경멸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클수록 지애비랑 똑같아진다는 친척들 사이의 수군거림은 내가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왜일까, 왜 그들은 내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했을까.
내가 아버지의 딸이라서 나까지 미워한 것일까?
아버지가 엄마를 편안히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엄마를 책임져야 한 것일까?
나는 누구일까? 아버지의 딸일까 엄마의 딸일까?
아버지가 얼마나 큰 잘못을 한 것일까? 죽어서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를 증오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가 그립지만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그가 있기를 바라지만 익숙한 얼굴만이 있을 뿐이다.
찾고 싶지만 결코 찾을 수 없는 나의 뿌리, 내가 증오해야 할 나의 썩은 뿌리. 사랑하지 말아야 할 나의 근원 아버지. 내가 사는 이 별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그를 아직 보내지 못했다.
나의 이름에, 나의 세포 어딘가에 그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없는 그리움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계셨더라면 내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을 거라는 생각,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반쪽뿐인 할아버지 사랑이 아쉬워
미안해진다.
그에게 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에게 나는 나였고 나이기에 유일했다.
이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내 편이었다.
그는 내 세상이었으며 내 모든 것이었다. 그에게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이별을 했다.
사랑보다 이별을 먼저 배운 나는 이별을 견디지 못한다.
이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기에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고 차라리 혼자를 선택한다.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고 마음껏 이별하지 못한다.
이별이, 혼자 남겨지는 게 너무나 두려워 이별의 문고리를 잡고 남겨지기 전에 도망갈 기회를 엿본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어린날에만 머무르지 않고 함께 자랐다. 세월에 풍화라도 되면 좋으련만 더욱 날카로워졌다.
모든 기억들이 구름에 가려진 달빛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기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카로운 기억에 매일을 베이며 살아가지만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는 외로움에 갇혀 혼자 숨을 토한다.
어둠 속에 앉아 무릎을 껴안고 가만히 그를 부른다.
당신은... 어디에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