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나의 무게

by 흔들리는 민들레




어느 날 아침을 먹는데 아이가 뜬금없이

아빠는 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랑? 그게 뭐더라...) 하고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남편이 대답했다.


" 원래, 사랑의 뜨거움은 3년만 가는 거야.

그 이후로는 정으로 사는 거다. "


(그, 그래 뭐 그렇긴 하지.. )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가 찝찝했다. 아침이라 그렇잖아도 입맛이 없어 밥알을 세고 있던 참인데 가락을 놓고 싶어 졌다.


" 그럼 난, 3년만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3년 있다 헤어지고 그래야겠다. "


해맑게 대답하며 뺨 속의 밥을 우물리는 아이에게 결혼 따위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음이 아파서 마음공부를 하며 무수한 생각의 숲을 지나왔지만 절박하게 들었던 생각이 있다면 내 아픔은 나로서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나라는 문을 통과해서 세상에 나왔을 뿐이기에 깨끗한 유산을 물려주고 싶었다.

깨끗한 유산이란 나의 그림자를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 어떤 색도 섞이지 않은 아이 본인만의 고유의 색으로 운명의 실을 짜며 인생길을 걸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왔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나처럼 가슴속에 큰 구멍을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처럼 스스로에 대해 수치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고, 사랑 앞에서 겁내고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처럼 버림받을까봐 고군분투하며 타인이 바라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고, 나처럼 세상을 냉정하고 차갑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유롭고 기쁘게 이 둥지를 떠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에 나는 아이에게 온 힘을 다해 박수를 보내줄 것이다.

그때에 결코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를 돌보아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변함없는 사랑의 힘을 간직한 어머니로 아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지켜볼 것이다.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 읽고 쓴다. 읽고 쓰기 위해 운동을 한다.

내가 받았던 양육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살아오며 어느덧 편한 옷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되고 그럴 때마다 살아야 할 가치를 잃게 된다. 이런 감정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정처 없이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헤매기를 반복하다 나 자신의 따귀를 때린다. 아이들을 보라고. 너처럼 키울 거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방황과 고뇌의 반복 속에서 결국 남는 결심은 하나다. 최악의 엄마만은 되지 말자는 것.

내 아픔을 대물림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최악이다.








남편은 두꺼운 벽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늘 두꺼운 벽처럼 거기 존재한다. 결코 떠나지 않지만 차갑고 단단하다. 나는 다가가 벽에 손을 대지만 온기는 찾을 수 없다. 그는 내가 그렇게 자라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했다. 나는 내가 부족해서 내가 잘 못해서 그런 거라 여겼다.

나를 움직이는 감정의 9할은 죄책감이자 수치심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익숙하고 편하게 여겨졌다. 남 탓을 하는 것보다 내 탓을 하는 게 더 편했다. 원인이 내게 있다면 나만 바꾸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제 알게 되었다.

남편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를 가진 완벽하지 않은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그 역시 흔들리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도 나처럼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내게 던져왔음을 나 자신의 마음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감정들을 서로에게 던져가며 그게 너라고, 비난해왔다.

나는 친정엄마의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남편의 열등감과 사랑에 대한 불신까지 떠안고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나는 친정엄마의 감정을 업고, 그 위에 남편의 감정도 업고, 아이들의 감정까지 업은 채, 오르막길뿐인 험준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걸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걸었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이고 지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데 발에서 피가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베이스캠프도 없이 쉬지도 못하고 걷는데 쓰러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들의 감정은 나 때문이 아님을. 내가 나빠서가 아님을. 그것은 그들 안의 감정임을, 내가 모든 무게를 이고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무게가 있고, 그 무게를 각자가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이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것은 삶이 지닌 가장 냉정하고도 비정한 측면이다.

나는 내 삶을 감당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러므로 나쁘지 않다.

내 불행은 친정 엄마의 탓도, 남편의 탓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나쁘지 않다.

모두가. 흔들리는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