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 잠자리에서 몸을 뒹굴인다.
눈을 비비고, 팔다리에 힘을 보내본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로 고개를 돌려 새로이 만나게 된 오늘이라는 날에 인사를 건넨다.
삶은 때로 고통의 연속이기도 하고, 허무함과 두려움의 반복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삶은 환희이기도 하고, 기쁨이나 감동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러저러한 감정과 상념들이 스쳐간다.
어떤 날은 무척 힘들고 괴롭지만 또 어떤 날은 그저 살만하다. 행복해서 죽을 것 같은 날들보단 견딜만한 날들 속에 아주 가끔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 삶이 아닐까.
나는 오랜 시간을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함께 지냈다.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많은 순간 삶을 포기하고 싶었고 많은 순간 공허하고 고독했다. 나 자신의 비루함과 무가치함 앞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과거에 뿌리를 내린 채 현재를 살아가는 나무와도 같지만, 나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뿌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뿌리가 썩은 나무가 서서히 죽는 것처럼 나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두 명의 프리다> - 프리다 칼로
지금의 나는 나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나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너무 아파서 몸부림을 친다. 고통스럽고 외로워서 무너져버리고 싶은 날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상담치료와 약물 복용, 그동안의 노력으로 과거의 고통이 감소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인 걸까? 반대로 그동안의 노력으로 고통이 감소되었다면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닌 걸까?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아팠고 여전히 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버릴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지나간 시간을 폐기할 수도 없고 영원히 기억에서 삭제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하루를 온전히 살아갈 뿐이다.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 했어야 할 일이나, 미래에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그 날 그 시간 그때에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고통스럽다면 온전히 고통스러운 감정에만 집중하고 슬프다면 온전히 슬픈 감정에만 집중한다. 고통스러운데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주어진다면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고통과 아픔에 이름표를 붙이거나 생각을 덧붙이지 않는다.
지금은 일을 해야 하니 고통스러운 감정은 미루어두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이나 아픔은 그대로 둔다. 그저 해야 할 일에 집중할 뿐이다.
어제라는 하루가 나의 감정으로 버겁고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 오늘이라는 하루에서 다시 잠이 깨었다면, 나는 오늘에 집중한다.
오늘이라는 날에 어제의 감정을 가지고 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다.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면 새로운 연인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연인을 만났는데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한다면 새로운 연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연인이 어떤 이유로든 떠나갔다고 해서 사랑했던 기억마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떠난 하루는 기억 속에만 남은 떠난 사랑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새로 만난 오늘은 새로운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제의 연인도 사랑이었고 오늘의 연인도 사랑이다.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이라느니 어떤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느니 하는 생각은 말자. 그때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면 그때는 그냥 사랑이었던 거다.
과거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할 것이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니까.
어제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오늘이라는 하루도 온전히 사랑할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일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의 나날들을 사랑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과 삶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법이며 연결법이다. 나는 이렇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