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입니까?

by 흔들리는 민들레





아이는 태어나서 엄마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한다.

열 달 동안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출산으로 아이와 분리되었지만 그 생명을 책임지게 되므로 아이를 분리시키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으로서의 분리가 이루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분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는 가정이라는 세상을 조금씩 벗어나며 유치원이나 학교, 그리고 친구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사춘기를 지나며 부모로부터 독립할 정서적 준비를 한다. 이때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이와 분리될 준비가 되지 않아서일 확률이 높다. 표면적으로 아이는 불합리한 반항과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행동의 본질은 부모로부터의 온전한 독립을 이루어 고유한 자기 자신이 되려는 필수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부모가 필사적으로 막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부모는 아직 아이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고, 아이는 자랐지만 온전히 홀로 선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아이는 강력한 자기주장을 하고 부모와 아이가 그 중간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다고 가정했을 때, 원천적인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경제력을 가진 부모에게 있다.

아이를 고유의 개성을 가진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고 부모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가진 권력으로 아이를 움직이게 한다고 가정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 익명의 권위와 개적 권위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공개적 권위란 " 그렇게 하지 마라. 너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잖니 "이고 익명의 권위란 " 나는 네가 그것을 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단다 "이다.

부모는 공개적 권위와 익명의 권위로 아이의 정서를 지배할 수 있다. 때로 어떤 부모는 아이를 강력하게 지배하면서도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기도 한다. 지배를 사랑인 줄 아는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뜻을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부모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부모의 지배를 사랑이라고 믿으며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될까? 자기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게 된다. 부모가 하던 말이 자신이 하는 말이 되고,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의 가치가 된다. 부모가 말한 것처럼 돈을 버는 데는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게 되고, 좋은 대학을 진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고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출산하고

출산을 했으면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켜야 하고, 그 아이 역시 명문 유치원을 보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행해지는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이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은 고유의 개인에게서 나오는 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이러한 루틴을 걸어가지 못한 이들은 열등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세상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해서 무기력감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천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개의 다른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다채게 하고 더 진보하게 하리라는 것은 시 자명한 일이다.

이 시대 경제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은 청년들이 아니라 중년들이다. 그들의 생각과 삶의 가치는 누구의 것인가? 사회의 것인가? 재벌의 것인가? 혹은 그들 부모의 것인가? 그들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 시대의 청춘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온전한 그들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현대인들은 모두 자기를 잃었다. 그렇기에 공허하고 무기력하다. 그리고는 다들 자기 계발서를 찾는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대로 따라 해 본다. 더 잘해야 한다면서,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혹은 이제 노력 따위는 그만하고 현실을 즐겨야 한다면서. 스님을 찾아가고 위대한 철학자를 찾아가 봤자 돌아오는 본질적인 질문은 결국 " 너는 누구냐? " 인데도, 그런 거 말고 자기 고민의 해결방안을 알려달라 한다. 느리고 깊은 성찰이 아니라 빠르고 간편한 해결책을 원한다.

명쾌하고 쉬운 답변을 원한다.

돈, 최고의 직장, 최고의 직업, 좋은 집과 차, 호화로운 휴가를 보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그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인가?

사회적인 기능을 가진 인간으로서만 살아간다면 그 모든 것들은 진짜가 아닌 허구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능들을 한 꺼풀 한 꺼풀씩 걷어내 보라.

누구의 아들, 아버지, 직장인, 누군가의 딸, 며느리, 엄마, 학부모, 어느 회사의 대표이사, 회장, 의사, 변호사, 형사, 상담사, 종교인 등등 이런 기능들을 한 꺼풀씩 걷어내 보면 무엇이 남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진정 당신이 원하는 것이 맞는가?




이러한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었었다.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없었고, 내 부모의 생각만 있었으며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만 있었다. 미디어가 심어준 사고방식만 있었고, 전통적인 관습만 있었다.

보편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건방진 편견만 있었다.

나는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생의 타당성을 가질 수 없었다.

자살률 1위 국가의 당당한 국민으로서 자살 욕구를 보유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이제는 깊은 성찰을 해보아야 할 때이다.

왜 우리가 그토록 자살을 하고 싶은 건지. 도대체 왜 그 분야의 1위를 기 힘든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