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바쁘게 움직인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와 이모를 돌봐야 했던 지옥 같은 집을 피해 도망친 곳에서 그분을 만났다.
자신의 과거를 뒤로한 채 성직자가 된 분이었다.
시니컬하고, 염세주의자 같기도 하고, 웃을 줄 모르는 분이었다.
본인의 주장은 관철시키고야 마는 고집과, 생각한 바를 타인들과 나누지 않는 독선을 지닌 분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저런 분이 결혼을 하지 않는 성직자가 된 건 다행이라는, 하느님이 여자 하나 구한 셈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시간이 지났고 타지에서 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나는 그곳을 떠났다.
휴식이 필요했음에도 나는 할머니와 이모를 다시 돌보아야 했으며 지옥은 다시 시작되었다.
금방이라도 덜덜거리며 멈춰 버릴 것 같은 세탁기에 할머니의 대소변이 묻은 천기저귀들과 정신지체 이모의 지린내가 밴 옷들을 넣으며 하루를 시작하던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부님이었다.
수화기 너머 점심은 먹었느냐며, 마치 어제 통화한 사람처럼 무심하고 무뚝뚝한 그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작은 식당에 마주 앉은 그분은 말이 없었다.
그저 잘 지내냐, 몸은 좀 어떠냐가 전부였다. 침묵은 금세 우리의 곁에 내려앉았다. 몇 년간 보아온 익숙한 침묵이었다. 나도 그저 모래알 같은 밥을 입에 떠 넣을 뿐이었다.
그는 할머님은 좀 어떠시냐고 물어왔다. 나는 무표정으로 그냥 그러시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표정이 없이 자신이 할머니에게 병자성사를 해 드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순간 여기저기 걸린, 다 헤진 할머니와 이모의 내복, 기저귀들, 활동하지 않고 누워 지내는 사람에게서 나는 특유의 채취가 가득한 집안의 상황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할머니와 이모의 손발이기도 했으나 스무 살의 여자 아이기도 했다.
방 두 개짜리 열 평 남짓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작은 주공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내게는 익숙한 냄새지만, 신부님에게는 어떨지 몰라 나는 얼른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부산스럽게 창문을 벌컥벌컥 열었다.
다 헤진 내복들과 천기저귀들을 급하게 걷어 이불속 어딘가에 처박고, 방 여기저기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치우며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와 이모가 있는 방으로 향했고 기도를 했다.
나는 앉지 못하고 서성이며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기도할 때조차 표정이 없어,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친절하지도, 상냥하지도, 부드럽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부였다. 위로하는 말이나, 조언 따위도 절대 하지 않는 신부였다.
" 차 드릴까요? "라는 내 말에 그분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됐다"라는 한마디만 짧게 뱉을 뿐이었다. 전형적인 한국의 무뚝뚝한 옛날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떠나시려던 그분은 가만히 나를 안아주셨다.
그때의 그 안음은 조용한 위로였다는 것을 나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힘든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피폐해져 있었다.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내게 그는 아버지와 같은 위로를 주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그분의 나이가 되니, 무표정과, 염세주의적인 시선과, 침묵과 피로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이 어떻게 생겨났을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편을 만나며, 수도자의 길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분이 왜 내게 수도자가 되라고 했는지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게는 관계의 무게를 감당할 힘이 없었다.
무겁고, 피로하고, 힘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 모든 고단한 관계들을 벗어나 조금은 편해지길 바라셨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애 최초의 위로를 건네주셨던 그분은 지금도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계시지만 나는 그분을 찾지 않는다.
그때의 나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저 마음속 감사함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저 그분의 피로에 공감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나는 그동안 버려진 채 살아온 것처럼 느껴왔지만,
돌아보면 불행 중에도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다.
나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변함없이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이들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응원과 사랑 덕분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무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거라는 이국종 교수의 말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고 싶다.
그것이 바로, 삶의 중량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다.
어쩌면 그분의 조용한 위로가 지금껏 나를 버티게 한 줄도 모른다.
온통 어둠에 잠긴 세상 속을 비추는 단 한줄기의 빛처럼 단 한가닥만은, 단 한 자락만은 그래 나도 사랑받는 사람이었어.라는 가냘픈 확신을 주신 것이 그분이 아닐까 싶다.
비를 맞는 이에게 필요한 건 우산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주는 그 누군가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