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신당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어머 오빠! 안녕하세요! 세상에, 여기서 뵙네요~"


반가운 마음에 선글라스를 벗을 생각도 못했다. 뒤늦게 선글라스를 벗고는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OOO잖아요, OO성당 주일학교에 다녔었는데!"


굳어있던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그때와는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내려앉은 세월 아래 그때의 모습이 분명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유명한 커플이었다.

언니는 공부를 잘했고 예뻤지만 예쁜척하지 않는 언니였다. 오빠는 공부를 잘했고 잘생겼지만 조용한 오빠였다. 내가 열일곱 살이었던 그때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이십 대에 결혼을 했다고 전해 들었고 나 역시 팍팍한 20대를 보내고 20대 후반에 이른 결혼을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 아이의 운동회에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 다시 재회한 세 사람의 인생이, 그리고 물결처럼 흘러가버린 30년의 시간이 경스럽게 느껴졌다.

분명 그 시간을 걸어온 건 나인데도 그 긴 시간을 살아와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



아이들은 힘껏 달렸다. 1등이 되기 위해 바통을 꼭 쥐고 달렸고 1등을 아슬아슬 따라잡은 2등을 응원하는 전교생의 응원이 터져 나왔다. 새파란 5월의 하늘 아래 만국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아이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생각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까.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고 같다면 무엇이 같을까. 생물학적인 노화가 마음도 변화시켰을까. 그들은 그때의 그들일까 아니면 다른 존재일까.




나의 어린 날는 막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두 아이의 엄마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건 둘도 없는 반쪽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불완전한 반쪽끼리의 만남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될 거라 생각했지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무엇도 되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가 내릴 선택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순간에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했고 최선이 최고가 되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러한 크고 작은 결정들이 생의 큰 물줄기의 흐름을 바꾼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될까? 더 좋은 선택이 있고 더 좋은 삶이는 것이 있는 걸까?






주체가 없다면 선택은 없을 것이다. 주체가 없다면 선택에 따른 책임도 없을 것이다.

주체가 없다면 운명이라는 것도 아마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의식이나 선택과 책임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 반대로 과거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현재가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는 다른 모습일까?






우리는 의도하진 않지만 과거의 선택에 영향을 받으며 현재를 살아가고 따라서 지금의 결정이 미래에 긍정적인 가능성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때때로 삶은 리를 보기 좋게 배신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좋은 결과로 응답해주지 않는다거나 예고도 없이 비극을 투척하는 배신을 저지른다.

지혜로운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은 삶에게 숱한 배신을 당해본 이들이고 그 배신을 결국 수용한 사람들이다.

분노나 무기력에 괴로워하는 이들은 아직도 삶은 언제든 자기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혜로운 이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삶의 배신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삶에게 무릎을 많이 꺾여볼수록, 자신이 가진 굳건한 믿음과 가치가 전복되는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삶의 날카로운 배신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새로운 가치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게 된다.

그 점에 있어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직도 삶의 배신에게 화가 나기 때문이다. 지혜로우려면 아직 멀었다.




삶의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변치 않는 하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달라지는 무수한 것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삶의 배신을 수용하고 매 순간 수많은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나은 인간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지혜로운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