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나처럼 살지 마라.

by 흔들리는 민들레









나는 두 딸의 엄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때론 아이들의 안에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미지의 존재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느낌보다는 같은 시절을 보내는 동반자, 동반자이므로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살아가며 마주하는 일에 대해 머리를 맛대어 함께 생각려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세상에 오기 전에 통과하는 하나의 문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나는 그들의 도우미로서 존재하고 아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때 나는 동반가 된다.




몇 년 전, 아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열에 들끓는 아이를 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촛불처럼 꺼져갈 듯한 아이를 바라보며 깊게 깨달은 것은 부모에게 낙인처럼 찍혀진 숙명이었다.

내 목숨을 팔더라도, 혹은 내가 가진 전재산을 팔더라도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깨달은 것은, 이 아이를 세상에 데려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꺼져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그저 곁에 존재하는 것,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하는 일이 부모의 숙명이라는 차가운 진실이었다.

나는 아이를 세상에 데려왔지만 그 무엇도 대신해줄 수 없다. 렇기에 내가 아이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든 선택과 책임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다.







내가 말하는 부모의 역할이란 방임이 아니다.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하고, 좌절을 경험할 때 품을 내어주어야 한다. 선택과 책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혹시 내게 어떤 선택이 최선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시 아이에게 되묻는다. 넌 어떤 선택이 최선일 것 같으냐고. 그럼 아이가 다시 물어온다. 엄마의 생각은 어떠냐고. 너의 인생이기 때문에 엄마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너만을 생각하라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은 이미 본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는 것이지 내게 결정을 내려달라 묻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의 선택이나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고 싶지 않다. 아이는 나를 통과했을 뿐 나만의 아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며

내게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의 눈으로 무한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는 이미 세상의 규범과 관습에 잠식되어 있는 존재다.

그것을 벗어던지고 자유스러운 내가 되기에는 조금 먼길을 와버렸다. 회적인 규범에 잠식되어 나를 잃지 않으려 매 순간을 노력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그러한 정서가 아이들에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나처럼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을 단단한 깨끗함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것은 정말로 간절한 바람인데 절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때때로 아이안의 미지의 존재가 내게 질문을 건넬 때가 있는데 그 미지의 존재는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게 만든다.



" 아빤 엄마를 왜 안 사랑해요?"


" 결혼하면 안 외롭잖아요. 근데 엄만 왜 외로워요? "


" 만약에 얼굴이 못생기고 성격이 착한 사람하고 얼굴이 잘 생기고 성격이 못된 사람이 있다면 엄마는 누굴 선택할 거예요?"


" 당연히 성격이 착한 사람이지, 엄만 전부터 성격이 착한 사람이 좋았어~"


" 그래서 아빠를 선택한 거예요? "


" 그렇지.. "


" 아빤 착해 보이지도 않고 엄만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데."



아이는 시도 무심하게 그런 말을 툭 던지고는 갑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질문은 가끔 몹시 날카로워서 내 삶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대로 괜찮은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 순도 100%의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듯하다.




아이들의 질문처럼 내 인생은 오류투성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상적인 결혼이라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을 전투하지도 않는다. 그저 체념했고 단념했고 포기했다. 그 체념 단념 포기들의 이면엔 바람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 바람은 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결코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리란 것도 깨달았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것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실은 의사 선생님이 얘기해줘서 알았지만 가끔 가슴이 미어지는 외로움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걸 보면 아직 그 현실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진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자주 울고 자주 외롭다.



친정엄마와의 관계 또한 오류투성이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요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요구들을 어렵게 거절해야만 하는 매 순간의 시험에 마주 선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힌다.



글을 쓰는 일도 오류투성이다.

내 글을 책으로 엮어 주겠다는 출판사는커녕 거절 메일이라도 받으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바쁘신 와중에 거절 메일을 보내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정말로 외로운 순간에는 거절저도 심으로 느껴진다.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거절이 낫다.



나는 견고하고 단단하기보단 약하고 흔들렸다. 과거에도 흔들렸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항해가 아니라 표류하며 살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절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내 정서가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안다.

나는 흔들리는 낙엽처럼 길을 잃었다. 저 낙엽은 가야 할 길을 알 있을까...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야 할 길을 알고 있는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저 많은 차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