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가스 라이팅이 이슈가 되고 있다.
가스 라이팅을 당하지 않는 방법부터 가해자나 피해자를 욕하는 다양한 글들이 넘실대는데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다.
다 큰 성인이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세뇌를 당하냐는 비난들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될까 걱정이 된다.
부모에게 몇십여 년 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사람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끊임없는 세뇌의 과정을 알 수 없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의 그 피폐한 정서를 알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인간쓰레기 취급은
우주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위성에 맞는 일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준다. 염산으로 만들어진 비를 우산 없이 맞는 일이다. 타는 듯한 고통, 참기 힘든 쓰라림 그 상처가 나을 만하면 다시 시작되는 고문적인 언어폭력들, 사랑을 가장한 지속적인 요구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가 어떻게 그렇게 피폐해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 내가 아니면 누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해주겠니?"
" 다른 사람이 너에 대해서 뭘 알아? 세상에 믿을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니? 그 사람 너무 믿지 마라. "
" 다 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
"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
" 너는 피부결이 좋지 않으니 가려지는 옷을 입어라. "
" 네가 뭘 안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지. "
" 엄마가 주는 옷을 입어라, 넌 옷을 볼 줄 모른다. "
" 엄마는 외로운 사람이다, 엄마는 너밖에 없다. 너한테도 나밖에 없다. "
이런 말들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정상적인 정서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낮은 자존감, 부재한 자아감을 가진 성인이 되었다. 가면을 쓴 채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만 살았다.
자살충동에 시달렸으며 우울증 무기력감에 시달렸고 결혼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그녀의 세뇌는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내면에 심겨진 그녀에 대한 정의는 무척 단단하고 견고하고 질겨서 뽑아내기가 힘들다.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단단한 사고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을 상담 중인 의사 선생님이 하고 있다.
나는 그녀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불쌍하지 않으며 너는 그녀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래야만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를 위해서 그러냐고 말한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너는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나는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만다.
그는 그건 의존적인 거라고 독립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의존적이 아니라고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라고 화낸다.
그는 내가 엄마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한 거라고 한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화를 낸다.
매주 똑같은 방식으로 그와 싸우고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운다.
그가 밉고, 엄마가 밉고, 남편이 밉고, 세상이, 밉다. 끝나지 않을 사막을 걷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무가치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나 자신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재활용조차 하지 못할, 영원한 쓰레기인 것만 같다. 이런 피폐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죽어야만 이 고통이 멈출 것 같다.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기분, 불타는 미로에 갇혀 점점 질식할 것만 같은 좌절감과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히는 나날들을 견디고 아직은 살아있다.
" 나는 매달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그들에게 음식과 돈을 가져다주었지. 그리고 나중에 부바가 양로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양로원비를 지불하고 2주에 한 번씩 그녀를 방문했지. 때때로 너를 데리고 갔던 것을 기억하지? 식구들 중 누가 나를 도와주었니? 아무도 안 도와주었어! 네 외삼촌 시몬이 몇 달 만에 한 번 씩 와서는 세븐업 한 병을 부바에게 주고 갔지. 그러면 다음번 내가 부바를 보러 갔을 때는 오로지 시몬 아저씨의 그 훌륭한 세븐업 타령만 하는 거야. 심지어 그녀가 장님이 되었을 때는 자리에 누워서 빈 세븐업 병을 높이 쳐들고 있었단다. 나는 부바만 도와준 것이 아니라 내 남동생 시몬과 하이미, 여동생 레나, 단테 한나, 네 아저씨 에이브, 러시아에서 내가 데리고 온 얼치기 이민자들 전 식구를 그 더럽고 조그만 식료품 가게가 먹여 살린 거란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한 번도! 게다가 아무도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안 했어. "
깊고 깊은숨을 들여 마시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 나는 감사해요, 엄마. 나는 감사드려요. "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하기까지 50년이나 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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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 너는 내게서 도망가고 싶으냐? "
" 아니요, 글쎄, 그런 의미는 아니고, 나쁜 의미는 아니에요. 저는 엄마도 마찬가지길 바라요. 저는 엄마가 이젠 좀 쉬실 수 있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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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해요. 외롭게 사는 건 어렵지요. 그러나 그게 사실인걸요.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서 저는 나만의 생각과 꿈을 가지고 싶어요. 엄마도 엄마의 것을 가지셔야 해요. 엄마, 저는 엄마가 내 꿈속에서 사라지길 원해요. "
엄마의 얼굴이 엄숙하게 긴장되면서 내게서 멀리 물러난다. 나는 급하게 덧붙인다.
"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라, 저는 우리 둘, 나를 위해서 또 엄마를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예요. 엄마도 엄마 자신의 삶을 위한 꿈을 가지셔야 해요. 엄마는 분명히 그걸 이해하실 수 있어요. "
" 오이빈, 아직도 너는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너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러나 나도 역시 인생을 들여다본단다. 그리고 죽음도. 나는 죽음에 대해서 이해한다. 너보다 더 잘 이해해. 내 말을 믿어라. 그리고 나는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너보다 더 잘 이해해 "
(중략)
" 너의 꿈?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게 바로 잘못된 거야, 오이빈. 너는 내가 너의 꿈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그 꿈은 너의 꿈이 아니다, 아들아. 아들아 그건 나의 꿈이야. 엄마들도 꿈을 가져야만 한단다. "
< 어빈 얄롬의 폴라와의 여행, 엄마와 삶의 의미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