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며 들여놓은 화분에 새로운 잎이 올라왔다.
새잎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손처럼 작고 보드라웠다. 아기의 손을 잡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잎을 쓰다듬는다. 올라오느라 애썼다고 가만히 속삭인다.
모든 식물들은 자라난다. 나무도, 꽃도, 토마토도, 옥수수도 자란다. 그런 성장을 볼 때마다 벌써 저만큼이나 자랐구나 감탄이 터져 나온다.
사람도 자란다. 딸아이의 키가 나보다 크게 자라나 감탄하고, 엊그제 돌이었던 조카가 180센티가 되어 감탄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라는데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성장은 아래로도 향한다
성장의 방향은 위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도 깊게 자라야 위로도 잘 자랄 수 있다. 깊은 성장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아서 더 그렇다.
나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했다.
노력하는 학생이었지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대학을 입학하지 못했고, 최근에는 만학도로 다시 도전했지만 떨어졌다. 또 취직을 하려고 이력서를 여러 번 냈지만 그것도 안됐다. (그것도 최근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을 맛본 것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였다. 2.8킬로로 작게 태어난 아이가 안아줘도 울고, 내려놔도 울고, 우유를 줘도 울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울어서, 밤새 너무 울어서 아이를 안고 벽에 기대 졸면서도 그게 영아산통이라는 것을 몰랐다. 무엇보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두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일은 매일매일이 극한 도전이었다.
계속 실패만 하다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실패와 실수를 만날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고, 또 어떻게 다시 힘을 비축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너무 괴로웠다. 패배감과 열등감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 배 터지게 물만 먹었다. 극복은 어떻게 하는 건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극복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극복이라는 건 뭐, 먹는 건가?) 그렇게 계속 실수와 실패만 하다 보니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두려워졌고 위축되었다. 그래서 도전하는 일보다 생각하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도전과 생각 사이에서 더 중요하고 긍정적인 것이 도전만은 아니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의 모든 실패와 실수들은 깊이 자라는 과정이었다. 그런 경험들은 위를 향한 성장처럼 눈부시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나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깊이, 아래를 향해 성장한다는 것은 그래서 지금보다 더 존중받는 가치가 될 필요가 있다.
실수와 실패로 꼭 대단한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괜찮다. 일부러 씩씩할 필요도 없다. 속상해도 괜찮고 후회해도 괜찮다. 세상에는 필요없는 일도 소용없는 일도 없는 것이다. 당신은 깊이 성장했다.
애썼다. 고생했다. 좀 쉬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