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반찬으로 조기 한 마리를 구우려고 했다.
물을 틀어 조기를 씻으려는 찰나의 순간에 조기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사과를 중얼거리며 조기를 씻어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아 팬에 넣었다. 팬에 넣고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뚜껑을 닫았다. 조기는 아이들과 남편의 몫이었다.
저 눈은 얼마나 무해한가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동물의 눈을 보면 슬퍼져서 먹지 못하는데 특히 생선이 그렇다.
물고기의 생명을 잃은 두 눈을 보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좋아하지도 않지만) 회는 먹을 수가 없다.
돼지나 소, 닭은 정말 가끔만 먹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미안해서다.
고기에는 고기 특유의 냄새가 있다. 돼지는 돼지의 냄새가, 소는 소의 냄새가, 닭은 닭의 냄새가 있는데, 내게 그것은 인간의 채취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동물이 가진 특유의 냄새가 인간의 채취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면 동물들이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내가 그것을 섭취하는 일이 다른 존재에 대한 폭력으로까지 느껴진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것 역시 슬픈 일이다.
저 눈을 보라. 얼마나 무해한가.
누군가는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할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해서 먹이를 먹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이다.
삶의 당연한 먹이사슬의 법칙이, 세상의 그런 원리가, 인간의 그런 존재방식이 슬프다.
인간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나 누군가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래서 때로는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내 안의 색과 다르지 않을 포장된 붉은 고기들, 판매대에 누워있는 두 눈을 가진 물고기들..
물고기가 바다에서 살아갈 때 보았을 많은 것들이 마치 화면처럼 흘러가고, 어느 부위가 되어 포장돼
기 전의 단계에서 경험했을 고통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치킨을 맛있게 먹는 내가 혐오스럽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이려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작가 한강씨의 말처럼, 때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더 인간다워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