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못 잤는지 아침부터 등이 아팠다. 걸레질을 하는데도 등이 아프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데도 아팠다. 머리를 감으려고 허리를 굽히는데도 아팠고 양말을 꺼내려고 낮은 서랍을 여는데도 아팠다.
처음에는 허리가 아픈 줄 알았는데 허리를 두드리다 허리 바로 위에 등이 아프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제 뭘 했더라.. 어젯밤에 뭘 했더라... 하며 등이 왜 아픈지를 생각해봐도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결론은 잠을 잘못 잤나보다였지만 하루 종일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어서 불편했다.
등이 아프면서 등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등은 늘 거기 있었겠지만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느끼지 못했기에 거기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거울을 볼 때도 등보다는 앞모습을 더 자주 보았으니까. 등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통증은 내게 그것이 거기 있음을 지속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곳이 왜 아픈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슬프고, 공허한 감정의 통증들은 내게 마음이라는 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고, 그것에 대해 자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이 왜 아픈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등이 아픈 통증의 원인은 잠을 잘못 자서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그 통증의 기원은 나라는 한 사람이었다. 원인은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고 그러한 사건을 통해 나 자신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통증으로부터 나 자신의 기원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들을 보냈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 것을 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통증을 자각하지 못한 시절보다 자각하고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는 통증으로 한 사람을 발견했으니까.
그 사람은 때로 운동화를 신고도 넘어지고, 안경을 쓰고도 지나치는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눌러서 엉뚱한 층에서 내리기도 하고, 아이가 영어로 목요일이 뭐냐고 물어올 때 수요일을 목요일이라고 잘 못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마음의 소중함을 안다. 남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는 민들레를 사랑하고, 타인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줄 안다. 눈부신 성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영원히 나와 함께 있어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통증을 조금은 견뎌볼 수 있을 것 같다. 통증과 온전히 함께 해줄 '나'라는 사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