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인 작은 아이는 예민하고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다. 잠귀가 밝고 잠을 오래 자지 않는다. 집안에 날파리 한 마리만 날아다녀도 그것을 잡을 때까지 의자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한다. 소리에도 민감해 큰소리가 나면 안정이 될 때까지 내 품을 파고든다. 두려움이나 불안이 많아서 평소에도 죽음이나 재해, 사건, 사고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에는 날씨가 선선해졌어도 모기가 한 두 마리씩 있어 침대 위에 모기장을 설치해줬는데 모기장 모서리 쪽에 난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는 잠을 이루지 못해 수리를 해주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또 시댁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것이 좋은 일일지라도(태권도의 띠가 상승된 일일지라도) 본인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아이의 분노다. 아이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될 때가 많다. 민감하므로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마주할 때면 분노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때로 화가 날 때가 있다. 지난번에는 아침식사시간에 거실에서 큰 아이와 내가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작은아이가 화를 내며 " 엄마, 내가 아빠와 얘기하고 있는데 조용히 좀 해주면 안 돼요?"라고 했다. 작은 아이와 남편은 식탁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얘기 중이었고 나는 큰아이와 거실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큰아이는 네가 얘기하고 있으면 온 가족이 조용히 해야 되는 거냐고 물었고 작은 아이는 엄마한테 얘기하는데 왜 언니가 끼어드느냐 했다. 나는 알았으니까 다투지 말라고 했고 그렇게 다툼은 일단락되었지만 마음속에는 그런 말들이 부유했다. ' 아... 피곤하다...'
여름휴가를 갔을 때 아이는 무섭기 때문에 나와 함께 자기를 원하면서도 숙소의 침대는 혼자 쓰기를 원해 나는 침대 옆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다가 공간이 너무 협소해 아이 옆에 올라가 잤는데 다음날 아침에 난리가 났다. 아이는 처음 세팅된 침구의 상태를 망치지 않으려고 이불 위에 올라가서 잤는데 내가 그 이불을 망친 것이다.
나는 아이가 단지 더워서 그렇게 자고 있는 줄 알았고 에어컨 바람이 추웠고 그래서 이불을 덮었고 또 그래서 아이에게 사과를 오십 번쯤 아니, 백번쯤 해야 했다. (그러고도 아빠를 붙잡고 엄마 때문에 이불이 다 구겨져버렸다고 하소연을 한 시간쯤 했다. 아이가 혼자 침대를 쓰고 싶어 했다는 것을 잊은 내 잘못이다)
때로 아이가 나를 전혀 존중하지도 또 내게 전혀 부모의 권위 따위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괴롭다.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내 안에 자리한 나에 대한 부적절감이 작동되는 것을 느낀다. 그 부적절감 때문에, 나는 그렇게(?) 자랐으므로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죄책감 때문에, 아이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이게 맞는지, 어떻게 해야 아이가 행복하고 나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지 길을 잃은 것 같은 날들이 자갈처럼 수두룩 빽빽이 펼쳐진다. 꽃길만 걷고 싶었는데 자갈길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