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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죽고 싶어...

엄마의 대환장 3

by 흔들리는 민들레



/ 엄마.. 엄마.. 나 죽고 싶어..

/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려!!


죽고 싶다던 아이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당직 의사가 달려와 아이의 의식을 흔들었다.


/ OO야! 눈 떠봐요, OO!? OOO!


의사와 간호사들의 분주한 걸음 뒤로 6인실의 커튼이 흔들렸 피가 묻은 병상 시트는 바닥에 여러 겹 쌓여갔다. 엄마는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포대기로 업고 큰 딸이 누운 침대를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 아이는 피를 토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빈 침대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아이가 누웠던 그 자리에는 엄마가 업고 있던 동생의 기저귀, 빈 젖병, 분유, 아이가 신던 슬리퍼, 담요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아이는 그 엄마의 큰딸이었다. 밑으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동생, 그리고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돌이 되지 않은 동생이 있었다. 고등학생인 남동생은 간혹 병실로 찾아왔고 금세 돌아갔는데 초등학생인 동생과 아기는 늘 병실에 함께 있었다. 고작 병상 하나와 성인 여성이 혼자 눕기도 버거운 보호자 침대 하나에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엄마와 아기까지 어떻게 잠을 청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옹색해 보였다.








큰 딸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다시 돌아왔고 아기를 초등학생인 남자아이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남자아이는 어린 동생을 유모차에 태우고 꼬질한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복도를 걸었다.

밤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가혹한 밤이었다. 내가 잠들지 못한 지 꼬박 사일째가 되던 밤이었고 작은 아이를 괴롭히던 불명열의 원인이 악성종양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던 밤이었다.

온 세상이 잠들어버린 것만 같던 그 밤 열두 시, 나와 그 엄마와 남자아이와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기는 고통스럽게 깨어있었다. 모두가 고통 속에 있었다. 작은 아이의 왜소한 고통도, 중환자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도하고 있을 그 엄마의 고통도 그리고 나의 고통도 생생하게 실재하 것이었다.









그 건물의 모두가 거대한 고통의 수렁 속에 들어있을 것이었지만 내가 본 그 고통은, 어쩌면 내 고통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고통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충분히 고통스러웠음에도, 동생의 유모차를 밀던 작은 손, 꼬질한 옷소매로 닦아내던 눈물, 그 왜소한 고통 앞에서 나는 내 고통을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이라 여길 수 없었다. 그리고 다가갈 수 없었다. 무어라고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괜찮을 거라고? 누나는 금방 나을 거라고?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힘내라고? 울지 말라고? 나는 복도 끝으로 멀어져 가던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그저 오래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다일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꺼져갈 듯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붙잡아 내 귀에 묶어두어야 했다. 나는 그 밤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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