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엄마.. 나 죽고 싶어..
/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려!!
죽고 싶다던 아이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당직 의사가 달려와 아이의 의식을 흔들었다.
/ OO야! 눈 떠봐요, OO!? OOO!
의사와 간호사들의 분주한 걸음 뒤로 6인실의 커튼이 흔들렸고 피가 묻은 병상 시트는 바닥에 여러 겹 쌓여갔다. 엄마는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포대기로 업고 큰 딸이 누운 침대를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 아이는 피를 토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빈 침대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아이가 누웠던 그 자리에는 엄마가 업고 있던 동생의 기저귀, 빈 젖병, 분유, 아이가 신던 슬리퍼, 담요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아이는 그 엄마의 큰딸이었다. 밑으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동생, 그리고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돌이 되지 않은 동생이 있었다. 고등학생인 남동생은 간혹 병실로 찾아왔고 금세 돌아갔는데 초등학생인 동생과 아기는 늘 병실에 함께 있었다. 고작 병상 하나와 성인 여성이 혼자 눕기도 버거운 보호자 침대 하나에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엄마와 아기까지 어떻게 잠을 청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옹색해 보였다.
큰 딸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다시 돌아왔고 아기를 초등학생인 남자아이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남자아이는 어린 동생을 유모차에 태우고 꼬질한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복도를 걸었다.
그 밤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가혹한 밤이었다. 내가 잠들지 못한 지 꼬박 사일째가 되던 밤이었고 작은 아이를 괴롭히던 불명열의 원인이 악성종양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던 밤이었다.
온 세상이 잠들어버린 것만 같던 그 밤 열두 시, 나와 그 엄마와 남자아이와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기는 고통스럽게 깨어있었다. 모두가 고통 속에 있었다. 작은 아이의 왜소한 고통도, 중환자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도하고 있을 그 엄마의 고통도 그리고 나의 고통도 생생하게 실재하는 것이었다.
그 건물의 모두가 거대한 고통의 수렁 속에 들어있을 것이었지만 내가 본 그 고통은, 어쩌면 내 고통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고통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충분히 고통스러웠음에도, 동생의 유모차를 밀던 작은 손, 꼬질한 옷소매로 닦아내던 눈물, 그 왜소한 고통 앞에서 나는 내 고통을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이라 여길 수 없었다. 그리고 다가갈 수 없었다. 무어라고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괜찮을 거라고? 누나는 금방 나을 거라고?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힘내라고? 울지 말라고? 나는 복도 끝으로 멀어져 가던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그저 오래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다일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꺼져갈 듯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붙잡아 내 귀에 묶어두어야 했다. 나는 그 밤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