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는 많은 짐들을 날랐다. 큰 아이가 중환자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더는 6인실에 머물 수 없었다.
그 침대에 들어올 다른 환자를 위해서 짐을 정리해달라고 병원이 엄마에게 말했다. 기저귀 가방, 반쯤 뜯긴 기저귀 봉지, 젖병, 물병, 큰아이 슬리퍼, 큰아이 가방, 이불 등을 정리했다. 많은 짐을 정리하는 엄마의 등 뒤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고 초등학생인 남자아이는 엄마를 도와 작은 짐들을 정리했다.
저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만약 큰아이가 깨어나 안정을 찾는다면 다시 병실로 돌아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 세 사람은 어디에 있게 될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의자 어딘가에 이불을 펴고 자야 할까. 아기는 춥지 않을까, 엄마는 뭐라도 먹은 걸까... 아이들의 아빠는, 아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친척이나 친구도 없는 걸까.. 잠시라도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걸까... 저 작은 아이들을 추운 복도에서 재우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그들은 떠나갔고 낯선 간호사가 그들이 떠난 침대를 소독하여 닦아내고 새 시트를 깔고는 사라져 버렸다. 침상은 이제 아무런 일도 없었다. 무심하고 차갑게 그냥 거기 있었다.
그 침상이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같았다. 무심하고
차가운 세상,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그런 세상...
" 엄마.. 나 쉬 마려워요.."
아이가 소변보는 것을 도와주고 나니 의사가 찾아왔다. 골수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눈물이 터져버렸고 그녀는 다시 말했다.
아이는 씩씩하게 잘 버티고 있는데 엄마가 힘을 내셔야 하지 않겠느냐 했다.
아이를 잃을까 봐 무서웠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된 작은 아이의 몸에 악성종양이 있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모든 것을 판대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다 불투명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빛나는데 나의 작은 아이는 흑과 백만 존재하는 ct 사진 안에 있었다. 림프절에서 시작된 백색의 동그라미가 아이의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흑백으로 그려진 쥬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 같았다.
아이를 처치실 침대에 뉘이고는 이마로 흘러내린 부드러운 잔디 같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
" 잠깐 자고 일어나면 돼.. 엄마랑 아빠가 OO 자는 거 지켜보고 있을게.. 알았지? "
아이는 제가 무슨 검사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손등에 연결된 링거줄로 주사약이 들어갔고 이내 작은 눈은 감겨버렸다.
아이가 그저 잠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긴 속눈썹이 내려앉는 것을 보는 것이 무척 아팠다. 온 마음이,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아이의 무너지는 속눈썹이 더 슬프고 더 고통스러웠다.
나의 흐느낌으로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버릴까 봐 소리 없이 울었다. 혹시 내 울음소리에 잠든 아이가 깨어 척수에 꽂힐 긴 주삿바늘의 통증을 단 1초라도 느끼게 될까 봐 토해지는 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사히 검사를 마치고 아이의 무너진 속눈썹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