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 최초의 사건은 일기장의 진술서(?)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인데, 2학기 때 전학 온 나를 이미 형성된 아이들 무리가 따돌린 일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하교 후 어디로 오라는 말에 나는 순진하게 그곳으로 갔다.
나는 혼자였는데 아이들은 여러 명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아이들이 좋지 않은 말들을 했고 끝으로 오늘의 일을 선생님에게 이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무척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에게 협박을 받았으니 겁이 나거나 두려울 법도 한데 두렵지는 않았고 억울했던 마음이 더 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크게 잘못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마음을 풀어놓을 곳(?) 이 없어 일기에 담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세 장을 썼고 그 일기를 읽으신 담임선생님은 대노하셨다.
지금은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제작될 만큼 따돌림이 사회적인 문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일들이 흔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작은 도시였기에 더 그랬다.
대노하신 담임선생님은 주동자와 그 무리, 그리고 나를 교단 앞으로 불러 세우셨고 아이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우리 반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고 당신은 너무 실망스럽다고.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고. 선생님은 주동자인 아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셨고 그 아이는 내게 사과했다. 이어 선생님은 강력히 말씀하셨다. 모두 들어라.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부모님을 학교로 오시게 하겠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그 무리에게 <건드려선 안 될 또라이>로 낙인찍혀 버렸고, 그 아이들은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남은 학기 동안 다른 착한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다.
쓰는 인간은 우울증도 역시 쓴다.
쓰는 인간은 우울증도 역시 쓴다.
진술서로 시작된 나의 열두 살의 글쓰기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을 지나 오기가 생기는 날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들이 맞물리고 반복되며 생방송과 재방송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계속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지만 이내 깨닫게 된다. 쓰느냐 마느냐에 나의 선택이 작용할 수 없음을.
오랜 글쓰기 역사로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떤 것이든, 무엇에 관한 것이든, 누구에 관한 것이든,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도 썼고, 정신과 치료 과정도 썼고, 우울증도 쓰고 있다. 만약 내게 글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글 쓰는 일이 내게 맞는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지만 지금은 안다. 내게 맞는 일인가 아닌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갈증을 느끼는가라는 것을.
우울에 몸부림치던 때, 아픈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계속 부스러트릴 때, 아무리 퍼내도 계속 슬픔이 차오를 때, 폐에 유리조각이 박힌 것처럼 숨 쉴 때마다 아플 때, 그런 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래서 그 우울 덕분에 나는 더 많이 썼고, 출간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