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제는 <존재>를 배울 차례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세워진 자아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자아


비가 그치고 나니 무지하게 더워졌다. 더워지니 시원한 옷을 찾게 되었다. 짧은 바지는 잘 입지 않지만 목 부분이 조금 파인 옷을 꺼내 입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거리에는 짧은 바지나 얇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손부채질을 하며 걸었고 그에 질세라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서 뜨거움을 쏟아붓고 있었다. 태양이 작렬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환경이나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자아가 형성된다. 그 자아에는 환경으로부터 받아온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이나 만났던 어떤 사람의 영향, 혹은 학교나 문화 같은 것들, 경험한 사건들에서 형성된 것들이 모두 자아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순간에 어떤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은 모두 과거에 형성된 그 사람의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형성된 것들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간다. 설령 그것이 현재의 삶에 불편함을 주더라도 그렇게 한다.


우리가 더울 때는 얇은 옷을 입고 추울 때는 두꺼운 옷을 입는 것처럼 자아라는 것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이 된다. 자아는 한 사람이 자기로서 살아가는데 무척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느끼는 나와, 타인에게 대해지는 나의 간극이 크다면 자아는 분열되며 그로 인해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불안함을 느끼고 건강하게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전체가 아니다.


자아는 그 사람의 <전체>가 아니다.


그러나 자아는 한 인간의 전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 <건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환경에 의해 건설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한다. 존재가 먼저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건설된 것(자아)+존재>로 구성이 된다.


자아는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지만 존재는 자아에 가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볼 때 드러나는 자아를 그 사람의 전체로 판단하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설된 자아를 자기의 전체로, 타인의 전체로 인식한다.


어떤 사람이 무례한 말과 행동을 내게 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절반쯤만 밉다. 무례한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건설된 자아>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역시, 내 안의 건설된 자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아 이전의 <존재>를 느낀다. 내게 <존재>가 있듯이 타인에게도 <존재>가 있는 것도 느낀다. 그러나 대부분의 람은 자신의 자아 이전의 <존재>를 기억하지는 못는 것 같다.








이제 존재를 배울 차례


이제, <존재>를 배울 차례


처음 나의 자아를 인지하게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너무 소중해서 확고하게 지키고자 했다. 내 생각과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붙잡고 분해하고 해했었다. 어떤 의미와 어떤 무의식적인 상징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그런 탐색의 시간들을 오래 가지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건설되었을 뿐인 자아에 너무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정서적 고통으로 자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자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러나 거기서 멈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어떤 것이 건설되었는지 배웠다면 앞으로는 건설되기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배울 차례이다.


때로 누군가가 나의 곁에 서서 마치 트레이너처럼(오늘은 유산소 운동 몇 분, 근육운동 몇 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이) 파일 하나를 들고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하나씩 체크해 나가며 지시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힘이 작용할 때는 멈추기가 힘들고 가속도가 붙어 두렵다. 성공이라고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나의 어디에서 그런 추진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전거를 배운 적도 타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미친듯한 속도로 타게 되는 것 같은 느낌다.


우리는 모두 자아 이전의 <존재>인 사람들이다.

어떤 옷을 입었건, 어떤 직업을 가졌건, 어떤 인종이건, 어떤 가치관을 가졌건, 모두가 자아 이전의 존재이다. 든 사람들이, 어떤 채색도 되지 않았으나 모든 색깔을 보유한 그 <자아 이전의 존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