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서적 학대를 겪으며 자랐다. 무척 가난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았다. 문이라고는 출입문이 전부였던 곳,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곳에서 살았다.
큰 이모와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 네 사람은 한 방에서 지냈다. 큰 이모는 늘 알 수 없는 말들을 했는데 어린 내 귀에는 그 말이 외국어처럼 들려서 이모는 외국말을 참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이모가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이모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가족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늘 그걸 느끼며 살았다. 그래도 버려지면 안 되니까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했다. 수많은 미움들은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지속되었고 너무 슬펐다.
나는 왜 이런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언제나 달고 살았다.
희생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을 것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절대 잊지 못할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경험은 너무나 강렬해서 트라우마를 남긴다. 때로 상처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내가 그곳에서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또 내가 그들에게 좋지 못한 존재로 대해진 것 역시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배경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는 것도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엄마는 내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주기를 바랐지만 그것 역시 내 의지의 범위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똑같이 주고 싶어 한다. 억울하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가 너무 고통스러웠으므로 가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익숙한 방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일은 생소한 방식으로 가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방식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익숙한 방식을 선택하고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그 인생은 그 자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아픔을 준 이들의 것이 된다. 가해자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이다.
나는 생소한 방식을 선택했고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담보 잡혔던 내 인생을 찾아왔다.
여전히 과거의 기억은 때때로 나를 아프게 하지만
나는 희생자나 가해자가 아닌 주도자와 창조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주도자와 창조자의 길은 꽃길이 아니다. 고통이 없고 가벼운 길도 아니다. 외롭고 고독한 길이며 때로는 슬프고 쓸쓸한 길이다. 끊임없는 내적인 질문과 마주해야 하며 종단이나 횡단을 넘어서는 영원의 길이다.
니체는 말했다. 생은 원의 형상을 띠며 영원히 반복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냐고.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나는 때로 아프고 억울하고 슬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니체에게 당당히 대답할 수 있다.